경제·금융

[월요초대석/발자취] 30여년 재야 여성운동 외길

정통성·전문성 확고한 발판지난 30여년 동안 재야 여성운동의 외길을 걸어오면서, 여성계 내에서 정통성과 전문성을 인정 받아온 몇 안 되는 인물중의 한 사람이다. 장관으로 임명될 당시 여성단체가 일제히 환영한 것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친정이나 다름 없는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마련한 장관 취임축하연이 눈물바다가 되었을 만큼 그를 아끼는 사람들 또한 많다. 한명숙 장관은 이대 불문과를 졸업한 직후인 70년대 초반부터 재야여성 운동계에 투신했다. 79년에는 크리스챤 아카데미사건으로 2년간 투옥된 바 있으며, 80년대에는 가족법, 남녀고용평등법, 성폭력처벌법 등의 제정에 앞장섰고, 90년대에는 남북의 여성교류를 활발히 추진하는 등 활동의 폭을 줄곧 넓혀 왔다. 한 장관의 여성운동 이력은 외조부모로부터 시작된다. 모친 성함은 이금애(李金愛)씨이다. 이씨와 김씨가 사랑해서 낳았다는 뜻으로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의 '원조'격이다. 새천년민주당 창당추진위원으로 영입 되어 정치에 입문한 뒤 16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 첫 해 국정감사에서 각 언론마다 베스트의원으로 선정할 정도로 성실하면서도, 전문성을 겸비한 활동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남편 박성준 박사(신학박사)는 결혼 직후 시국사건으로 투옥된 자신을 13년 반이나 옥바라지를 해 한 장관에게 "이제는 내가 뒷바라지 할 차례" 라며 아침마다 밥 한 술 더 뜨고 출근하라는 세심한 외조를 아끼지 않고 있다. ▦45년생 ▦이대 불문과 졸 ▦이대 여성학과 졸(석사) ▦여성민우회 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방송개혁국민회의 공동대표 ▦15대의원(국회환경노동위원회 위원) ▦새천년민주당 여성위원장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