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가 좋아졌다고 느끼십니까?" 지난 2002년 한국 대선 때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후보가 후보 TV토론에서내놓은 이 한마디가 권 후보의 주가를 한껏 높이면서 한동안 유행어가 됐었다.
당시 권 후보는 미약한 당세때문에 당선권에선 거리가 멀었으나, 그 22년전인 1980년 미국 대선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도전했던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는TV토론 마무리 발언에서 "여러분 4년전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졌습니까"라는 똑같은말로 경제난에 시달리던 미국 유권자가 바라는 바 정곡을 찌르며 8% 포인트 뒤지던판세를 단숨에 역전시키고 당선됐다.
공화당 조지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대선 후보가 오는 30일, 10월 8일, 13일 세차례 갖는 TV 토론회는 대선 일정상 대선 승부에 가장 결정적인 작용을 할것이라는데 선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28일 동시 발표된 3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이 6-8%의 차이로 케리 후보를 앞서고 있으나, 이들 3차례 토론회는 케리 후보에게 마지막 역전의 기회이고, 부시 대통령에겐 굳히기의 기회다.
여론조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TV토론 내용을 보고 지지후보를 정하겠다는 유권자가 많게는 2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 대선에서 후보 TV토론은 1960년 리처드 닉슨 대 존 케네디 대결에서 첫 도입 후 한동안 열리지 않다가 1976년 제럴드 포드 대 지미 카터간 대선에서 부활돼지금까지 4년마다 실시되는 동안 매 선거마다 중요한 승패 요인이었으며, 특히 1960년, 80년, 2000년(조지 부시 대 앨 고어) 대선에선 결정적인 변수였던 것으로 선거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런 만큼 부시 대통령과 케리 후보는 이미 틈나는 대로 상대편의 역대 선거 후보 토론 비디오나 오디오, 녹취록을 연구하면서 가상 토론도 벌이는 등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미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케리 후보는 특히 그동안 주지사나 상원의원 등 자신의 선거에서TV토론을 져본 적이 없는 토론 명수로 알려져 있지만, 스타일은 정반대여서 대선 승패에 미칠 영향은 물론 토론회 자체의 승부에 대한 호기심도 자극하고 있다.
미 언론들에 소개된 두 후보의 스타일을 종합하면 부시 대통령은 `변칙 복서'이고 케리 후보는 `정통 복서'이다.
부시 대통령은 `본능적인 파이터'로서, 세부적인 지식은 부족하지만 토론회 내내 냉정을 잃지 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집중적이고 명료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이다.
케리 후보는 고교때부터 토론회 클럽 활동을 할 정도로 정식 토론 훈련을 받았고 세세한 면까지 정통한 토론의 명수이나 부시 대통령 스타일의 변칙 복서엔 취약하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케리 후보도 토론이 느슨할 때는 헤매는 경우가 있지만, 상대의 공격을받으면 즉각 반격에 나서 숨돌릴 틈도 없이 몰아치는 공격 성향을 드러내는 `인파이터' 기질이 있다는 평이다.
그러나 앞서 예에서 보듯, 대선후보 TV토론의 승패는 후보들이 말하는 내용이나방법보다는 두 후보가 1대 1로 사활을 건 대결을 벌이는 숨막히는 긴장의 90분동안한순간의 눈짓까지 포함해 총체적으로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달려 있다.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후보가 부시 대통령과 토론 도중 긴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낸 것이나, 1992년 대선에서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이 토론회 막판에 시간이얼마나 남았나 손목시계를 2차례 힐끗 본 장면 결정적 패인이었으며, 1984년 레이건대통령이 자신의 나이를 문제삼는 월터 먼데일 후보에게 "나는 내 상대의 어린 나이(youth)와 미숙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없다"고 반격한 것이 결정적 승인이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이들 사례는 그러나 한순간의 재치나 실수가 대선이라는 대사를 좌우하는 것을의미하기보다는, 후보들이 극한의 긴장속에서 무심결에 드러내는 본모습으로 유권자들이 인식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0일 토론회와 10월13일 토론회는 1대 1 토론 방식으로 각각 국가안보와 국내문제를 주제로 하고, 10월 8일 토론회는 주민간담회 방식으로 주제 제한없이 열릴 예정이다.
(워싱턴=연합뉴스) 윤동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