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미국의 대주주 경영인

전문경영인이 기업의 발전을 위해 좋은가, 아니면 창업자 또는 그 후손인 대주주 경영인이 회사를 위해서 좋은가. 이 주제는 한국에서 오너 회장이라고 불리는 창업자 가문의 경영권 상속을 놓고 많은 논의가 이뤄졌지만, 미국에서도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기업 경영의 화두다. 주식시장이 발달한 미국의 경우 상장회사 대부분이 전문 경영인에 의해서 경영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S&P 500 지수를 구성하고 있는 상장사 가운데 3분의1에 해당하는 177개사가 창업자 또는 그의 후손들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더욱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대주주가 경영하는 기업의 경영실적이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 회사의 그것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S&P 500 지수 상장회사의 지난 10년간 경영실적을 분석해보면, 대주주 경영회사의 매출 증가율이 23.4%인데 비해, 전문경영인의 회사는 10.8%을 나타났다. 수익 증가율에서도 대주주 경영회사는 21.1%인 반면, 전문경영인 회사는 10.8%였다. 주식 투자수익률은 15.5% 와 11.2%, 자산수익률에서는 5.4%와 4.1%로 각각 나타나, 모든 경영 지표면에서 대주주가 경영 책임을 진 회사의 실적이 전문 경영인들을 훨씬 앞서고 있다. 물론 휴대폰 회사인 모토롤라사처럼 일부 회사에서는 창업자 후손들이 경영을 잘 못해 회사가 어려워지게 된 경우도 있다. 또 창업자 가족 사이에 송사에 휘말려 회사가 어려워진 사례도 있다. 하지만 미국 기업 가운데 대체로 창업자 가족경영이 전문 경영인에 비해서 월등한 경영성과를 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경영상의 분명한 차이를 가져온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창업자 가족의 오랜 경험을 들 수 있다. 창업자 후손들은 어려서부터 회사 일을 참여해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경험을 쌓았고, 부모를 비롯한 가족으로부터 일상적으로 사업적인 분위기를 익혀 체질화한 것이 사업성공의 요체가 되고 있다. 둘째, 이들의 정신과 마음이 사업에 집중돼 있어 의사결정이 일반적 조직에서의 결정 과정보다 빠르다. 셋째, 창업자 가문의 경영자들은 종업원이 회사에 충성하도록 분위기를 잘 조성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주주이므로 종업원에 대한 요구사항도 많지만, 반대 급부로 이들에 대한 보상도 잘 하기 때문에 기업 생산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창업자들은 일반적으로 종업원을 기업 발전의 밑받침이 되는 장기적 자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넷째, 대주주 경영인들은 회사 이익을 배당에 충당하기보다 미래를 위한 재투자에 더 적극적이다. 재투자가 재산 증식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스톡옵션이나 높은 연봉으로도 해결 할 수 없는 대주주만의 특유한 사명감을 들 수 있다. 이 역시 가족적인 배경과 더불어 가진 재산의 대부분이 회사와 연결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가 회사 경영의 책임을 맡는지의 문제는 시장 원리를 고려해 회사가치를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창업주 가족에게서 경영 후계자를 찾아야 한다거나, 전문 경영자가 아니고서는 극심한 경쟁에 살아남을 수 없다느니 하는 편파적이고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 나야 한다. 창업주라고 해도 기업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게 되면 자기보다 경영을 잘할 수 있는 이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기업 인수와 합병(M&A)이 기업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기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되는 까닭도 여기 있다. 창업자는 그들 나름의 사명감, 의지력 그리고 미래를 보는 예지가 남보다 앞선다고 하겠다. 그러나 후손에 이르러서는 경영에 대한 자질과 성품을 철저히 검증해서 기업을 승계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고려 없이 창업주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적절한 훈련과정도 없고, 자질에 대한 철저한 검증도 없이 경영을 세습하는 한국의 현실은 경제에 많은 부담이 되고 있다. 미국 기업인들에게 역할 모델(role model)이 되고 있는 투자가 워렌 버핏 회장은 그의 사업 승계에 관해 의미 있는 대답을 한 바 있다. 올해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20년 후 올림픽에 능력과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아들을 출전 시킬 수는 없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경기에 이기기 위해 그 시점에 가장 잘 뛸 수 있는 사람을 선발해서 뛰게 해야 한다. 창업자 가족인가, 전문경영인인가의 논란이 중요한 게 아니고, 시장 원리에 맞게 회사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경영자를 선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영만 주미 한국상의 명예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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