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돈 가뭄 무책인가(사설)

돈 가뭄이 심화되어 기업의 목이 타고 있다고 한다.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까지 돈 구하기가 어려워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다.자금난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만성적이지만 자금의 동맥경화 증세가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한보·삼미부도 여파가 지속되고 김현철 의혹과 관련된 기업에 대한 수사등 악재가 겹쳐 있다. 여기에 진로 살리기를 위한 부도방지협약이 더해져 제2금융권과 사채시장까지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자금난을 반영, 어음부도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1·4분기중 어음부도는 사상 최대 규모인 5조원대를 육박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가 증가한 것이다. 어음 부도율도 0.23%로 90년대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도하면 주로 중소기업이지만 대기업도 7개사에 이르러 자금난이 보통 심각하지 않음을 반증한다. 기업의 돈가뭄 원인은 직접금융의 위축에서 찾을 수 있다. 증시가 침체, 주가가 떨어지면서 주식이나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렵게 되어 있다. 주가 하락으로 주식을 발행해도 팔리지 않을뿐 아니라 회사채를 발행하려해도 금융기관이 보증서기를 꺼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금융권에서 돈 빌리기가 쉬운 것도 아니고 하늘의 별따기다.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은행권이 신규대출 여력도 없을뿐 아니라 또다른 부실대출 홍역을 꺼려 대출을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자금조달도 어려워 대출여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은행의 해외신용도가 낮아져 「코리아 프리미엄」이 높아지고 있는데다 국제금리 상승이 겹쳐 금리부담이 커지고 있다. 그나마 해외금융시장에서 급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제2금융권과 사채시장마저 얼어붙었다. 할부금융사등은 부도방지협약후 오히려 대출 회수에 나섰고 사채시장에서 어음할인이 중단되거나 금리가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자금사정의 악화는 금리 상승을 부추기고 투자촉진을 저해하게 마련이어서 경기회복과 경쟁력 강화를 지연시키게 된다. 금융당국은 꽉 막혀 있는 자금의 흐름을 뚫어 경기회복기의 투자수요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융제도와 관행의 개선이 앞서야 할 것이다. 단기 처방과 함께 만성적인 자금난의 근본 치유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신용있는 대기업은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증시를 통한 직접금융방안을 활성화 해야 한다. 담보가 없는 중소기업엔 금융기관의 신용대출을 확대해야 한다. 물론 기업도 금융기관에만 의존하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기업확장과 부동산 사재기나 하는 시대는 지났다. 은행부채가 많은 기업은 망한다는 교훈을 이번 한보·삼미·진로사태가 똑똑히 보여줬다. 자구노력을 우선해서 자금운용을 건전하게 하면 금리도 낮아진다. 그만큼 기업의 금융부담이 줄고 체질도 강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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