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특별기고] `그린스펀 거품'이 꺼진다면

98년 한해를 되돌아보면 미국은 세계 경제에 구세주와 같은 역할을 했다. 지난해 8월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이후 세계 금융시스템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자 미국은 세차례에 걸친 신속한 금리인하로 세계 금융시장을 구해냈다. 또한 세계 수요의 약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내수가 활황을 보여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을 받아주었다. 이는 아시아 경제 나아가서는 세계 경제가 더 이상 추락하는 것을 막았다.미국 경제는 위대한 구세주였고 그 뒤에는 미 연준의장인 그린스펀이 있었다. 그린스펀의 시의적절한 금융완화 정책으로 미국의 주가 상승과 더불어 내수 활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 주가가 아질아질할 정도로 높은 곳에 와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미국의 주당 순이익대비 주가는 38(S&P 500기준)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체들이 세금을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기업수익이 나빠지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주가는 과대평가 되었다. 시가총액이 3,000억 달러가 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가치를 단지 인력과 기술력을 포함한 무형자산 가치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 주식시장에 소위 「그린스펀 버블」이 발생한 것이다. 주식시장의 버블은 실물경제에도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92년 이후 지속적인 주가 상승을 바탕으로 미국의 소비자들은 지출을 늘렸다. 급기야는 지난해 9월과 10월중 미국 가계의 저축률이 30년대 대공황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상태를 보였다. 또 주가 상승에 따른 내수 증가로 미국의 무역적자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98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약 2,200억 달러로 규모로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경제는 91년 3월부터 최근까지 7년 이상 경기 확장국면을 누리고 있다. 전후 미국의 경기 확장국면이 평균 50개월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두배 정도 길게 경기호황이 지속되고 있다. 60년대 월남전쟁으로 인한 확장국면을 제외하면 이번이 전후 최장기 호황인 셈이다. 무엇이 미국경제를 이렇게 강하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정보화혁명일 것이다. 미국은 80년대 후반부터 정보통신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나 기업차원에서 이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 각 산업에서 생산성이 크게 증대되었다. 생산비용의 절감으로 미국경제의 총공급선이 우하향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것이 고성장과 저물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했다. 미 상무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정보기술(IT) 산업이 96년과 97년동안 실질 경제성장에 25% 기여하고 인플레이션율도 1% 포인트 감소시켰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만 증대된 것으로 장기호황이 지속될 수 없다. 수요가 뒷받침되어야 그것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미국 경제에서는 주가상승에 의해서 수요가 창출되었다. 처음에 정보화에 따른 생산성 증가로 기업의 수익이 증가해 주가가 올랐다. 주가 상승은 부(WEALTH)를 증대시켜 가계로 하여금 소비지출을 늘리게 했다. 주가 상승 등으로 미국 가계의 순부(純富)가 92년 이후 50% 정도 늘어났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한편 주가 상승으로 기업의 가치가 오르면서 설비투자도 크게 증대했다. 소비와 투자증대에 따른 경기호황은 다시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주가와 거시경제변수의 선순환(VIRTUOUS CYCLE)이 지속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주식시장이 펀더멘털을 과도하게 반영하여 주가에 버블이 발생했다. 역사는 버블이 언젠가는 꺼지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버블의 정도가 심할수록 그후의 고통은 그만큼 더 크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주가가 하락할 조짐을 보이면 미국 가계들은 가계부를 재점검하고 소비지출을 줄이게 될 것이다. GDP의 68%를 차지하고 있는 가계소비가 감소하게 되면 미국 경제는 수요부족으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공급능력은 이미 충분히 확충되었는데 장기호황을 견인해온 수요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미국경제에 초과공급 현상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에는 앞으로 미국경제가 90년대의 일본 경제를 닮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린스펀 버블은 98년에는 구세주였지만 99년에는 전세계적으로 금융위기와 디플레이션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단일국가로는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미국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면 우리 경제의 회생은 그만큼 지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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