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로마제국을 만든 것은 귀족이 아닌 병사였다"

1,000년 역사 중 절반이 전쟁<br>로마군 삶 통해 흥망성쇠 조명<br>■ 강대국의 비밀 (배은숙 지음, 글항아리 펴냄)




'1000년 역사의 로마제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계층은 귀족이 아니라 전쟁에 동원됐던 병사다.' 로마시대의 군대와 제국의 관계를 연구해 온 배은숙 씨의 이 말은 로마는 황제와 귀족이 발전시켰던 공화정이라 일부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지배계층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던 병사들의 삶을 통해 로마가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지를 밝히겠다는 신념이자 집필의 목적이 담겨있는 말이다. 로마가 BC 509년 공화정을 수립한 후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폐위된 476년까지 약 1,000년 동안 전쟁을 하며 보낸 시간은 약 600년. 간헐적인 전투나 사소한 분쟁을 제외하더라도 절반 이상이 전투시기였다. 즉, 로마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다. 2500년 전 로마군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로마에서는 5년에 한번씩 호구조사를 통해 군인을 징집했다. 고대국가들이 직업군인과 강제동원 형식으로 군대를 운영한 반면 로마는 철저한 징병제였다. 로마에서는 17세 이상 46세 이하의 남성 시민권자는 군대를 회피할 수 없었다. 원정 전투가 늘어나면서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동성애도 공공연했다. 병사들의 훈련은 고됐다. 완전 군장으로 3일간 100㎞ 행군을 한 달에 3번이나 하고 수시로 전투대형 전환법을 익히는 등 군사훈련과 신체단련, 전쟁 실습을 반복한다. 유대군 적장이었던 요세푸스가 '로마군에게 훈련은 피를 흘리지 않는 전투였고, 전투는 피를 흘리는 훈련이었다'고 할만큼 로마군의 승리는 끊임없는 훈련에서 나왔다. 전투 준비도 병사들의 몫이었다. 주둔지 건설, 물과 식량 준비 등 노역은 병사들의 군기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로마군의 주둔지는 정교하기로 유명했다. 병사들의 상벌은 뚜렷하게 구별됐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자에게는 훈장ㆍ금관ㆍ투구ㆍ갑옷 등 부상을 넉넉하게 수여하는 반면, 전투 중 비겁하게 행동한 자에게는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처벌이 가해졌고, 전쟁 중 자리를 이탈한 자에게는 체벌과 처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함께 싸웠던 동료들이 그들을 때리게 하는 등 체벌은 혹독했다. 그들은 단점을 적에게 배워 보완했다. 초기에는 뚜렷한 대형도 없이 무조건 돌격했던 로마군은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 도시국가들이 최초로 사용했던 밀집대형 전술을 7세기 전수받아 발전시켰고, 갈리아족에 비해 뒤떨어졌던 기동성을 강화하기 위해 중대편제로 개편하는 등 끊임없이 변화했다. 한편 로마 멸망의 원인 역시 군대로부터 시작된다. 제국 후기에는 초기와 달리 훈련에 매진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적의 요새를 공격하기보다는 아군의 요새를 방어하는데 주력했다. 군기가 해이해져 주민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징집에 응하지 않거나 탈영하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로마군의 장점이었던 조직적 대형이 훈련부족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없자 패하는 숫자가 늘어났다. 결국 세계 최강이라고 믿었던 로마군은 점차 영토를 적에게 넘길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또 로마군이 치른 주요 전쟁의 승패 요인을 분석해 부록으로 실었다. 역사 드라마를 보는 듯 로마군의 삶을 정교하게 복원해 낸 책은 로마가 어떻게 제국으로 성장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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