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한림칼럼] 부품소재산업과 對日 무역 역조

우리나라 정보기술(IT) 관련 산업이 발전한 과정을 되돌아보면 선진국 모델과는 상당히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예컨대 선진국의 IT산업은 탄탄한 기초기술을 기반으로 완제품을 개발하는 이른바 ‘보텀-업(bottom-up)’ 방식인 데 비해, 국내 IT산업은 완제품을 조립ㆍ판매하는 데에서 시작해 부품소재 쪽으로 내려가는 모델, 즉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우리나라 전자산업 태동기를 돌이켜보면 6ㆍ25 전쟁 후 시중에 흘러나온 고장 난 기계류, 특히 전기전자 기계류 부속품을 수집해 나름대로 제품을 조립해 시중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이렇게 ‘무’에서 시작한 전기ㆍ전자산업이 오늘날 세계 IT산업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전자산업 규모에서도 세계 4위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더욱이 그것이 짧은 기간(지난 60년을 기준으로 약 50년)에 이뤘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톱-다운 방식의 전략은 곧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조립 및 생산기술 위주의 완제품(set)과 중간제품(device), 그리고 일부 부품산업의 경우 압축성장이 가능해 짧은 기간 동안에 일정한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부품의 핵심이 되는 소재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첨단부품을 생산하기 위한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향후 IT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아킬레스건’이 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즉 이 소재기술이 뒷받침돼야 제대로 된 부품을 개발할 수 있고 부품의 성능이 완벽해야 중간제품과 완제품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IT산업은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또 수출을 늘릴수록 더 많은 부품과 소재를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른바 ‘수입유발형’ 수출주도산업이다. 산업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240억달러를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무려 160억달러가 부품ㆍ소재 분야에서 일어났다. 이는 전체 대일 무역 적자의 66%를 차지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하느냐다. 이 자리를 빌려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지정학적 위치, 즉 동북아 중심의 경제권,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한ㆍ중ㆍ일 3개국을 잇는 환황해권(Yellow Sea rim) 내에서 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기술이 앞선 일본과 제조 및 생산에서 비교우위를 보이는 한국, 그리고 거대한 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을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global network)’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환황해권, 국내로 보면 서해안 지역의 입지 조건을 활용해 IT산업, 특히 부품ㆍ소재산업 단지를 건설한 후 일본의 앞서가는 기술을 보유한 부품ㆍ소재 전문기업을 유치해 생산ㆍ제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또 이곳에서 생산되는 부품ㆍ소재를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판매하도록 유도하면 한국은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제품을 만드는 생산기지로 고용을 확대하고, 또 일본도 최근 중국의 반일 감정 등으로 인한 무역 장벽을 완화하는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이러한 방향에서 우리나라는 기초ㆍ기반기술이 핵심이 되는 부품기술, 특히 소재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이 길만이 우리의 미래 먹을거리로 떠오르고 있는 ‘IT산업 강국’을 이루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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