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 중시' 혁신가속 최대호황 밑거름
■ 자동차업계
'2002년 6월8일'은 한국 자동차산업 역사에서 하나의 큰 획이 그어진 날이다.
이날 현대자동차는 다임러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에 승용차 엔진기술을 팔아 2012년까지 10년간 총 6,550만 달러의 로열티(기술이전료)를 받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업체가 자동차 제조의 핵심인 엔진기술을 해외에 이전하는 '사건'이 발행한 것이다.
현대차는 지난 76년 미쓰비시에서 오리온 엔진기술을 넘겨받아 포니를 첫 개발한 이후 25년만에 세계적인 업체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게 됐다.
이는 현대ㆍ기아차ㆍ쌍용차 등 국내 업체들이 외환위기 이후 뼈를 깎는 듯한 경영 혁신을 통해 원가절감과 품질 향상 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불량률을 제품 100만개 당 3~4개 수준으로 낮추는 '6시그마' 운동은 국내 자동차가 기존의 '싸구려'에서 '값이 싸면서도 품질도 좋은' 제품으로 선진 시장에서 인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전세계적인 공급 과잉과 메이저 업체들의 수익성 하락에도 불구하고, 국내 업체들이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 등 기본기를 중시하는 경영 혁신을 이뤄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해외 조사기관의 호평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J.D. 파워사가 현지 소비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2002년 신모델 품질평가'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해 조사 때보다 각각 21%ㆍ19% 향상, 품질 향상률 1위를 기록했다.
조사대상 업체들의 평균 품질향상률은 10% 수준이었다. 특히 현대차의 경우 지난 5년간 품질 향상률이 42%에 달해 이스즈(39%), 미쓰비시(38%), 다임러크라이슬러(27%)를 제쳤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DRI-WEFA도 지난 1997년부터 오는 2007년까지 10년간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에 대한 성장 가능성을 분석한 결과 현대차를 281%로 가장 높게 평가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의 이 같은 성과는 완성차의 최고 경영진에서 부터 협력업체의 생산직 직원까지 일심동체가 되어 경영혁신에 나섰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2010년 글로벌 톱5' 달성을 위해 "품질 혁신과 원가 절감"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정 회장은 품질 향상을 위해 공장을 수시로 돌아보는 등 '현장을 가장 많이 찾는 경영인'으로 유명하다.
현대ㆍ기아차가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6시그마 운동'. 현대ㆍ기아차는 6시그마 활동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 소비자들의 고질적인 불만 사항이었던 '주행 때 차량의 쏠림 현상'을 해결했다. 이에 따라 그랜저XGㆍ싼타페ㆍ뉴EF쏘나타 등이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경영 혁신 작업은 쌍용차의 경영 정상화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회사의 관계자는 "품질을 대폭 개선한 렉스턴ㆍ무쏘 등의 판매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10년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 데 이어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이 전망된다"고 밝혔다.
부품ㆍ협력업체도 마찬가지다. 현대모비스는 '완성차의 경쟁력은 부품사의 품질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모토 아래 스피드ㆍ지식경영 체제 구축에 들어갔고, 협력업체들도 완성차 업체의 6시그마 활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 "제품품질 높여야 생존" 鄭회장 직접나서 독려
현대자동차는 '2010년 글로벌 톱 5' 달성을 위해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서, 품질 향상 등 경영 혁신 작업을 독려하고 있다.
정 회장은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은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며 "6시그마 경영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새로운 기회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고 틈만 나면 강조하고 있다.
현대차가 '6시그마 경영혁신'에 나선 첫해인 지난 2000년에는 651건의 프로젝트에 124억원의 비용절감을 했고, 지난해에는 제조 공정은 물론 사무관리 부문도 프로세스를 개선, 2,400여건ㆍ628억원의 효과를 거뒀다.
현대차는 또 오는 2004년까지 매년 1,000명 이상의 개선 전문가를 양성하는 등 전직원의 10%를 6시그마 전문가로 육성할 계획이다. 특히 생산은 물론 국내외 영업부문과 지원ㆍ연구개발(R&D) 등이 각 사업부가 유기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 고객 만족도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방침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 같은 성과는 사업부별로 인센티브를 강화,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데다 협력사들도 강도 높은 경영혁신 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협력사들의 경우 지난해 개선 전문가 398명을 양성하고 50억원의 재무 개선 효과를 거뒀으며, 앞으로 임직원의 2.5% 이상을 개선 전문가로 키울 방침이다. 또 2003년까지 6시그마운동을 전 협력사로 확산, 양질의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할 방침이다.
▣ 품질향상 프로젝트로 조립생산 합격률 97%
기아자동차는 품질혁신을 비롯한 전 분야의 핵심역량 강화를 통해 그룹의 '2010년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에 기여한다는 목표 아래 '대(大)경영 혁신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이 혁신운동의 핵심은 지난 99년말 품질ㆍ업무ㆍ의식 혁신의 3대 틀을 중심으로 도입한 '6시그마' 활동. 기아차는 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인 '품질'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6시그마를 판매력ㆍ수익성ㆍ생산성ㆍCS 향상 등 핵심 역량을 결집하는 구심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아차는 이를 위해 2004년까지 전사원의 10%인 2,500명의 개선 전문가를 양성, 3,000건의 핵심개선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미국시장 초기 품질 지수'인 IQS 점수를 선진 메이커 수준으로 올릴 방침이다.
기아차는 이미 지난 2년간의 경영혁신 운동을 통해 개선 전문가 300명을 양성하는 한편 250여건의 품질향상 프로젝트를 추진, 총 20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와 완성차 조립생산 합격률을 99년 80% 수준에서 지난해 97%까지 향상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대형 상용차 엔진의 핵심 부품인 크랭크샤프트 가공공정의 경우 불량 건수를 100만대 중 대당 13,300 건에서 6시그마 수준으로 개선, 전국 프로젝트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또 지난해부터는 부품의 품질을 향상시키지 않고서는 완성차도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고 6시그마 운동을 전 협력회사로 확산시키고 있다.
▣ 품질혁신 'SSQ-2002' 경영 정상화 일등공신
쌍용자동차의 경영혁신 프로그램은 경영 정상화의 밑거름 역할을 하고 있다.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해 렉스턴ㆍ무쏘 등은 히트 차종을 잇달아 출시함으로써 10년만에 흑자 전환, 사상 최대 매출 등을 통해 회사 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
쌍용차는 우선 지난 8월부터 '경영 목표를 초과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품질혁신 프로그램인 'SSQ-2002'운동을 시행 중이다.
이 운동은 '쌍용자동차(SS)가 품질(Quality)'을 혁신, '작지만(Small) 강한 품질(Strong Quality)'로 "국내 최고의 완성차 생산업체가 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차량의 품질을 50% 이상 향상시킨다는 목표 아래 최근 임직원과 협력업체 사장단이 참석한 가운데 '품질 혁신 킥 오프(Kick-Off) 대회'를 열고 1,200여개 중점 개선 과제 설정, 책임개선제 및 개선전담팀 선정 등 전사적인 품질혁신 운동에 돌입했다.
또 품질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통합품질 관리시스템(Integrated Quality Control System) 사전품질확보(Advanced Product Quality Process) 시스템 등도 강화키로 했다. 특히 창원공장의 경우 30만대 규모의 신엔진공장 건설을 앞두고 공장혁신의 모범사례가 된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고 있다.
이 공장은 한상태 공장장 등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신바람나고 보람찬 공장을 만들기'를 위한 공장혁신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창원공장은 또 생산 효율 극대화를 위해 오모토 엔지니어링(Omoto Engineering)사로부터 경영 컨설팅도 진행 중이다.
▣ 지식 경영팀 별도 구성 지식 경영 체제에 돌입
현대모비스는 올해를 경영혁신의 원년으로 삼고, 스피드 경영과 자발적 경쟁을 모토로 하는 지식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자동차 부품산업 특성상 수만가지가 넘는 제품들에 대한 정보공유와 정보시스템을 구축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로 변신하려는 목적이다.
현대모비스는 회사 전임직원들의 '100% 정보공유를 통한 지식창출'을 위해 인트라넷 전산시스템을 통한 정보 데이터베이스화는 기본으로 하면서 지식경영팀을 별도로 구성했다. 단순한 정보공유 수준을 넘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내자는 차원이다.
지식경영 전담조직인 지식경영팀은 8월부터 ◇정보자료실 ◇지식마일리지 및 보상 제도 ◇우수지식인 발굴 ◇지식도우미 제도 등을 통해 모든 임직원들이 자발적 경쟁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창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른바 직원 및 부서간 정보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스피드경영이다.
구매분야에서도 스피드 경영이 실시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1월부터 국내 최초로 기업 소모성 자재(MRO)의 통합 구매 시스템을 구축, 인터넷을 통해 구매를 시작했다. 이와 함께 협력업체로부터 구입한 모든 물품 대금을 전자방식으로 신속히 지급하는 선진화된 시스템을 도입해 '윈윈' 경영에 나서고 있다. 모든 물품 거래 대금을 은행을 통해 직접 업체 계좌에 입금하는 등 어음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강한 협력업체가 강한 본사를 만든다는 전략이다
최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