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곡·김선 감독 '밤밤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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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철 감독 '잠수왕 무하마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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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선 감독 '나 어떡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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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연 감독 '당신과 나 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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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석 감독 '험난한 인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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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영화판이 술렁거렸다. ‘올드보이’의 박찬욱,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여균동,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박광수 등 소문난 감독들이 모여 단편 연작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들 감독 외에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그리고 당시 ‘죽어도 좋아’로 주목 받았고 2년 후 ‘너는 내 운명’으로 흥행감독대열에 올라설 박진표가 합류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영화가 ‘여섯개의 시선’. 영문제목 ‘If you were me’(내가 너라면)이 암시하듯 우리 사회 소수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진지한 사회적 고민을 그들 특유의 감성과 터치로 담아내 영화 마니아들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아온 영화 연작 시리즈인 ‘시선 시리즈’가 2003년 ‘여섯개의 시선’, 2005년 ‘다섯개의 시선’에 이어 ‘세번째 시선’으로 돌아왔다.
이 시리즈는 이름만 들어도 영화팬들을 열광시키는 감독들의 사회성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 하지만 참여하는 감독들은 사회성 뿐 아니라 영화에 자신들의 개성과 실험정신을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때문에 1편부터 3편까지 총 17편의 영화 중 그 어느것도 반짝반짝 빛나지 않는 것이 없다.
첫번째 만남, '믿거나…' 박찬욱 최고영화 찬사
2003년, '여섯개의 시선'
박찬욱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지금까지도 일부에서 “박찬욱의 최고 영화 아니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수작. 경찰에 의해 행려병자로 오인 6년 4개월동안 정신병원에 수감된 네팔 노동자 ‘찬드라 구룽’의 기막힌 사연을 담았다. 박찬욱 감독 등 영화 스탭들이 현재는 네팔로 돌아가 있는 찬드라를 직접 만나 촬영한 엔딩장면이 코끝을 찡하게 한다.
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은 김문주라는 한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의 일상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 장애인 문제를 돌아보게 한 영화. 특히 장애인 이동투쟁으로 잡혀간 친구를 생각하며 홀로 광화문네거리를 무단으로 횡단하는 장면은 광화문 네거리에 횡단보도가 실제 설치되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박진표 감독의 ‘신비한 영어나라’는 그야말로 ‘쇼킹’하다. 아이의 영어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혀 수술을 시키던 당시의 세태를 재치있게 풍자했다. 이밖에 임순례 감독과 박광수 감독은 ‘그녀의 무게’와 ‘얼굴값’을 통해 외모중시풍조를 풍자했고 정재은 감독은 ‘그 남자의 사정’을 통해 각박한 도시문화에 일침을 날렸다.
두번째 만남, 장진 등 웃음 속에 감춰진 비수 보여줘
2005년, '다섯개의 시선'
2005년 만들어진 ‘다섯개의 시선’에도 어김없이 스타급 감독들이 대거 모였다. ‘킬러들의 수다’의 장진, ‘피도 눈물도 없이’의 류승완, ‘해피엔드’의 정지우, ‘송환’의 김동원 등. 이중 장진 감독의 ‘고마운 사람’은 그야말로 ‘깨는’ 영화다. 학생운동을 하다 잡혀온 주인공과 그를 고문하는 수사관의 대화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재치있게 꼬집은 이 영화는 상영시간 24분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극장에서 울려 퍼지는 폭소와 박수 소리와 함께 우리 사회의 아픈 이면이 소리없이 드러나는 영화다.
류승완의 ‘남자니까 아시잖아요’는 남자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우리사회 반쪽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작품. ‘배울 만큼 배운’ 주인공이 포장마차 술자리에서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보이는 언행을 통해 일상에서 우리 사회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차별을 드러낸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반전은 귀여우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정지우는 ‘베낭을 멘 소년’을 통해 탈북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큐멘터리 감독 임동원과 박경희는 ‘종로, 겨울’,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를 통해 각각 이주노동자와 장애인들에게 시선을 던진다.
세번째 만남, '말아톤' 정윤철 등 참여 충무로 기대주 김현필 감독 작품 눈길
2006년, '세번째 시선'
이번에는 또 어떤 감독의 세상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시선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이 기획된다는 이야기에 들은 기대감이다. 이번 영화에선 ‘말아톤’의 정윤철, ‘버스, 정류장’의 이미연, ‘선택’의 홍기선 감독, ‘마이 제너레이션’의 노동석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충무로에서 기대 받는 신진들인 김곡ㆍ김선, 김현필이 참여했다.
이중 정윤철의 ‘잠수왕 무하마드’는 그의 전작 ‘말아톤’의 향취를 흠뻑 맡을 수 있는 영화다. ‘말아톤’에서 장애인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던 그가 이번엔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주노동자 무하마드에게 시선을 던진다. 주인공의 열악한 현실과 돌고래, 물고기가 떠다니는 환상적 화면이 교차해 묘한 비애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이미연 감독의 ‘당신과 나 사이’는 TV 드라마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흔히 보아온 부부간의 육아문제를 조명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상적인 주제를 보다 보면 우리 사회 가정 내에 흐르는 묘한 성차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배우 김태우가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없는 평범한(?) 우리 사회의 가장을 연기하는데 그의 선한 외모를 통해 드러나는 아내와 엄마에 대한 인권침해가 뼈아프다.
노동석의 ‘험난한 인생’은 영어학원에 다니는 사립초등학교 학생 경수의 생일파티가 무대. 경수는 자신의 생일파티에 영어학원 원어민 강사의 딸 제인을 초대하고 초대 받은 아이들과 엄마는 그녀를 들뜬 마음으로 기다린다. 그런데 하얀 백인소녀가 나타날 꺼라 믿었던 모두의 기대를 져버리고 나타난 아이는 흑인 소녀. 그때부터 차별이 시작되고 흑인소녀 제인을 사랑하는 한국인 소년 경수의 험난한 인생이 시작된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소위 ‘색깔차별’을 재치있게 꼬집은 작품.
홍기선 감독의 ‘나 어떡해’는 비정규직의 설움으로 어머니의 부음에도 가지 못하는 한 노동자의 한스러움을 담은 영화다. 정진영, 오지혜 등 1급 배우들이 참여한 이 영화는 그 안타까운 사연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아프다.
쌍둥이 형제 감독 김곡ㆍ김선의 ‘밤밤밤(BomBomBomb)’과 김현필 감독의 ‘소녀가 사라졌다’는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잊고 있던 민감한 소제를 다룬 영화들. ‘밤밤밤’은 청소년의 성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왕따’문제와 버무려 놓았다. 경쾌한 록음악과 함께 서글픈 이야기가 진행된다. 김현필 감독의 ‘소녀가 사라졌다’는 그 동안 연민의 대상이기만 했던 10대 소녀가장을 보통 소녀의 모습으로 조명한 영화다. 불쌍하게만 보고 보살펴줘야 하기만 할 것 같았던 소녀가장도 사실은 사랑에 아파하는 보통 소녀일 뿐이라는 메시지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