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환경피해책임의 정당성


환경오염피해구제법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가 국회를 직접 찾아가 이 법률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환구법안은 경제활동을 옭아매는 과잉 규제로서 경제 현실을 무시할 뿐 아니라 규제비용 대비 실익도 의심스럽다는 것이 그 요지다. 과잉 규제의 핵심은 기업에 대한 과도한 책임의 부과다.

책임은 사인(私人)의 행위에 대해 사회가 비난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따라서 책임의 유무와 정도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평가되기 마련이다.

기업 책임은 사회후생 키우는 일


잠시 이 법안 탄생의 계기가 됐던 지난해 9월로 돌아가보자. 당시 구미 불산 누출사고를 시작으로 잇달아 발생한 대기업 공장의 사고는 생산과정에서 화학물질의 사용이 가져올 리스크가 얼마나 큰가를 체험케 했다. 피해자가 겪게 된 공포와 상처를 생각해보라. 기업의 경제활동이 타인이나 사회에 피해를 준다면 그것이 재산권이나 일반적 행동의 자유에 터 잡은 것이라 하더라도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기업이 수많은 수혜자를 낳는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피해자를 방기(放棄)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이는 사회정의에 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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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책임은 법적으로 결정돼야 한다. 기나긴 정치과정을 거쳐 제정된 법률은 정치사회가 합의한 가치판단의 기준이고 시장참여자가 조정해낸 게임의 규칙이다. 환경정책기본법은 1990년 제정된 이래로 환경법과 정책의 기본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이 법은 ‘사업활동으로 환경오염ㆍ훼손의 원인을 발생시킨 자는 그 오염ㆍ훼손을 방지하고 오염ㆍ훼손된 환경을 회복ㆍ복원할 책임을 지며 환경오염ㆍ훼손으로 인한 피해의 구제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여야 하고 이 경우의 책임이 무과실책임’이라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이 규정에 터 잡아 ‘사업장 등에서 발생되는 환경오염으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 당해 사업자는 귀책사유가 없을 때에도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해왔다. 나아가 대법원은 피해자가 과학적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운 환경오염사고의 특성을 고려해 ‘공해로 인한 불법행위에 있어서의 인과관계에 관하여 당해행위가 없었더라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정도의 개연성, 즉 침해행위와 손해와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상당 정도의 가능성이 있다는 입증’으로 충분하다고 판결해왔다. 재계가 문제 삼는 환구법안은 바로 이런 대법원 판결을 반영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시행시기 등 조정에 초점 맞춰야

책임은 ‘기능적’으로도 살펴봐야 한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재화나 서비스의 시장가격이 그 가치를 그대로 표상해야 한다. 기업이 그 생산활동이 야기하는 각종 피해를 책임지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기업활동이 야기한 사회적 비용을 내부화하지 않는다면 그 시장경제의 가격 시스템은 실패하게 되고 결국 그 시장경제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기업의 환경책임을 바로잡는 것은 사회후생을 키우는 것이기도 하다. 환경책임을 바로 지우는 것은 당위의 문제일 뿐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인 것이다.

법의 역사는 책임의 역사다. 고대법 연구에 따르면 사적 복수(復讐)의 관행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책임법이 자리하게 된 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1:1 응보’의 관념이 기여한 바가 결정적이다. 이와 같이 책임법의 역사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함을 웅변한다. 환경피해가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재계의 문제 제기는 이상의 논의를 전제로 한 뒤에야 비로소 온당한 것이 될 수 있다. 재계의 요구가 이런 상식을 전제로 합리성에 기초한 세부 규정의 미세조정과 시기 조절에 초점이 맞춰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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