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KPX-한전 통합 능사 아니다


지난 9ㆍ15 정전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사건이었다. 작금의 우리나라 전력 계통은 그야말로 힘겨워 비틀거릴 정도로 무거운 짐을 견뎌온 당나귀에 비유할 수 있다. 무거운 짐은 매년 예측하기 어렵게 증가하는 통제불능의 전력수요다. 매년 여름이면 전력운영 실무자들은 부하 예측과 수급 대책 마련에 늘 긴장했고 고비를 넘기면 곧바로 다음해를 대비한 점검에 돌입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혹자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해당 기술자를 두둔하는 한가한 발언을 한다고 책망할 것이다. 물론 이번 사고에 실무자의 잘못도 결코 적지 않다. 사고 당일 부하 예측이나 비상시 예고 실패에 상응하는 책임은 마땅히 져야 한다. 싼 전기요금이 정전사고의 본질 그렇지만 무리한 짐을 지운 화주나 평소 당나귀의 건강을 관리하지 않은 주인에게도 그 이상의 책임이 있다. 짐이 많아 힘겨운 당나귀라도 좀 더 잘 몰았더라면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당나귀 몰이꾼만 다그치는 것은 옳지 않다. 당나귀의 체질 개선과 알맞은 짐 관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떠한 대안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전력거래소(KPX)와 한국전력을 합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당나귀 주인과 몰이꾼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차제에 당나귀의 체질을 개선할 체제 개편이 필요하다면 공정한 경쟁을 효율화하고 균형된 규제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 뿐이다. 지난 몇 년간 전력의 과소비는 관리불능 상태에 이르렀고 공정한 경쟁과 규제의 역할은 퇴보를 거듭했다. 이번 순환정전 사고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불행한 사건이지만 큰 시각으로 보면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비현실적인 전기요금 구조와 제 기능을 상실한 규제 메커니즘이다. 일사불란한 협조체제의 부재가 이번 사고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참으로 시대착오적이다. 앞서 지적한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체제도 이번과 같은 사고를 피해갈 수 없으며 일사불란한 단일 체제는 오히려 '공평한 경쟁, 균형된 규제와 견제'를 잃을 위험이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연합(EU)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채택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한전과 같은 송전망운영자(TO)가 발전사업이나 판매사업과 경영상의 관계(소유, 자회사, 임원 참여 등)를 갖지 못하도록 금지한다. 국회에서 법을 고쳐 송전과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한전이 전력거래소의 계통운영자(발전소와 송전운영자에게 전기 공급 등을 지시하는 권한 포함) 기능까지 행사하게 한다면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송전ㆍ계통운영 통합이 불가피하다면 한전의 전력판매 부문(검침ㆍ요금청구 업무와 지사ㆍ지점망) 분리를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6개 발전자회사를 거느린 한전이 민간 발전사업자를 차별대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통합시 전력판매부문 분리해야 재삼 강조하자면 실패한 에너지 소비 관리가 빚어낸 '전력 다소비 구조의 만연'이 위기의 본질이다. 가정용은 누진제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지만 그 외 대부분은 과소비로 치닫고 있다. 다른 에너지에 비해 평균원가 이하의 싼 전기료가 문제다. 농사용 난방도 전기로 바뀌고 있고 상업용 공간에서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냉방온도를 낮추는 일이 흔하다. 산업용은 에너지 절약 공정 개발에 투자하기보다 수출 경쟁력을 빌미로 원가보전을 위한 전기료 인상에도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이런 근원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체제도 성공할 수 없으며 정전사고는 이번 겨울에도 발생할 것이고 어쩌면 연례행사가 될 것이다. 산업과 생활양식이 매우 다양해진 현대 사회에서 전력을 공평하고 안정되게 공급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이를 실현하는 데 있어 소비자의 역할도 그 어느 때보다,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해진 시점에 와 있다. 안정된 에너지 공급체계를 유지하는 일은 어느 한 집단의 책임이 아닌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이 글은 김정훈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의 2일자 기고 '정전사태 재발 막으려면'에 대한 반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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