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누가 우리의 경쟁자인가

며칠 전 필자는 고어텍스와 같은 고기능성 섬유를 원재료로 하여 스포츠 및 아웃도어 의류를 생산ㆍ판매하는 회사의 전략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전략 회의의 주제는 ‘우리 회사의 경쟁자는 누구인가’하는 것이었다. 스포츠 및 아웃도어 의류를 생산하는 회사들은 많다. 노스 페이스ㆍ에이글ㆍ나이키ㆍ아디다스 등 세계적인 브랜드를 비롯하여 국내외에서 엄청나게 많은 회사들이 가히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차적으로 모든 산업은 동 업계의 수많은 회사들끼리 가격ㆍ품질ㆍ원가 등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러나 경쟁자는 과연 동업 타사들뿐일까. 오랜 회의 끝에 우리는 아웃도어 의류생산업자의 주요 경쟁자는 게임 기능이 달린 휴대폰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유는 이렇다. 고급 브랜드 자동차들, 예컨대 벤츠와 BMW 혹은 캐딜락은 같은 자동차라 해도 저가 자동차와는 경쟁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급 자동차가 팔리는 주요 이유는 수송수단으로써가 아니라 고급스런 만족감 때문이다. 따라서 고급 자동차는 ‘고객의 돈’을 놓고 밍크코트ㆍ보석ㆍ고급 휴양지에서의 멋진 휴가 등과 치열하게 경쟁한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자. 지난 50년대 미국의 볼링장비 제조업자들은 미국 시민들의 소득이 높아지고 또 회사의 근무시간이 단축되면 가족 단위의 여가활동이 늘어날 것임을 알아차렸다. 볼링장비 제조업자가 자유시간 시장(free time market)의 잠재력과 성장가능성을 가장 먼저 인식하고 가족단위 활동으로 볼링을 적극적으로 광고선전했다는 것이 동 산업이 50년대 크게 성공한 이유이다. 그런데 60년대 볼링장비산업은 갑자기 쇠퇴를 맞게 됐다. 흥미 있는 것은 볼링장비 제조업자들이 열심히 영업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반대로 볼링장비 제조업자들은 보다 더 나은 성능과 품질의 장비를 개발하려고 엄청난 자원을 투입했고 가격을 낮추기 위한 원가절감에도 매우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링은 여가활동 시장(activities market)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경쟁자를 동업 타사로만 보았고 활동(activities)에서 오는 만족을 제공하는 다른 모든 공급자들을 경쟁자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볼링장비 제조업자는 사실 동업 타사들과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도시 주민의 자유시간을 두고 다른 모든 활동들과 경쟁한다. 볼링장 주인은 캠핑과 등산을 비롯한 야외활동ㆍ보트타기ㆍ잔디 깎기ㆍ영화관ㆍ서점ㆍ레스토랑, 그리고 심지어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 등과 자유시간 빼앗기 경쟁을 한다. 그런 활동들은 지금까지는 볼링과는 동일한 범주에 속한다고 간주된 적이 없는 재화와 서비스들이지만 시간 빼앗기에 관한 한 경쟁자들이다. 이런 활동들은 돈보다도 더 귀한 것 즉 자유시간을 필요로 한다. 석사 학위를 취득하려고 저녁 시간을 활용하는 젊은 엔지니어나 중견경영자는 볼링을 치러갈 시간이 없다. 게다가 볼링장비 제조업자들은 새로운 다른 활동들, 예컨대 롤러스케이팅이나 산악자전거 타기가 고객의 자유시간을 빼앗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볼링장비를 대체할 새로운 활동장비를 개발하지도 못했다. 여가활동 시장에서는 사람들은 소유하기 위해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사용하기 위해 구입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재화(예를 들어 볼링장비)를 구입할 것인가 아니면 서비스(야간대학원 수강)를 받을 것인가를 결정할 때 그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지출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활동을 할 시간이 있는가, 그리고 사용시간의 길이는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요컨대 구매시점에서 시간이 가장 중요한 선택기준이 되는 것이다. 아웃도어 의류를 구입하는 고객이 돈과 시간을 들여 추구하는 것은 아웃도어 의류를 입고 야외에서 ‘시간을 사용하는 만족’이지 ‘의류를 소유하는 만족’이 아니다. 따라서 아웃도어 의류업체들은 외관상으로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듯 보이는 제품이라도 고객에게 동일한 시간사용의 만족을 제공하는 수단을 가진 다른 재화나 서비스와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 중 가장 막강한 경쟁자는 아웃도어 활동이 아니라 전천후 실내외 활동인 컴퓨터 게임이다. 따라서 게임 기능이 달린 휴대폰이 아웃도어 의류회사의 주요 경쟁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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