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대·중소유통 공생 합의의 '가벼움'

한국체인스토어협회ㆍ이마트ㆍ롯데마트ㆍGS리테일 등 대형 유통업체 대표들이 지난 22일 전국상인연합회ㆍ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대표들과 함께 '상권갈등'을 해결하기로 뜻을 모았다. '표플리즘'만 앞세운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고 실제 이해 당사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자율적으로 월 2회 휴무하고 신규 출점을 제한하겠다고 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유통산업발전협의회(가칭)'를 오는 11월15일 출범시키기로 했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이 같은 합의를 주도해 무게도 실렸다.


하지만 합의문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면 알수록 '가벼운' 내용에 우려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협의회가 11월15일에 제대로 탄생할지부터 의문스럽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A4 한쪽도 채 되지 않는 합의문 작성에도 대·중소 대표들 간 이견이 많아 발표 하루 전날까지 문구를 수정했다"며 "아직 협의체 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더욱이 협의할 구체적인 내용은 협의회 출범 이후 논의하겠다며 한발 뺐다. 출범 이후 구체안이 나오면 발표해도 될 일을 왜 그리 서둘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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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24일 홍 장관과 대형 유통업체 사장들은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돼 국회에서 다시 만났다. 대기업 골목상권 침해 관련 질타를 받을 것이 뻔한 상황에 미리 보호막을 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전국상인연합회와 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가 중소상인을 대표하는지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지역별로 상권단체들이 무수히 많은데 두 단체가 전체를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합의에 참여하지 않은 또 다른 중소상인단체인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는 '대형마트들이 출점을 자제하고 자율휴무를 실행하기에 앞서 각 지자체를 상대로 제기한 의무휴업집행정지 소송부터 풀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배포하며 합의 내용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대형 유통업체와 골목상권이 강제조정이 아닌 자율적인 갈등해소에 나서기로 했다는 점은 두 손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형 유통업계가 이번 합의를 자발적으로 이행하기로 한 약속도 지켜졌으면 좋겠다.

다만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한 각본에 중소상인들이 '들러리'를 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알맹이 없는 내용을 서둘러 발표하는 보여주기식 정책이나 이벤트를 그동안 너무 많이 봐왔던 기자의 '기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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