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식어가는 심장


대학 근처 북카페가 인기다. '웬만해서는 열람실에 자리가 없고 하지 말라는 게 많아 도서관은 가 본지가 오래됐다'는 학생들이 북카페의 단골이다.

한때 도서관은 '대학의 심장'으로 불렸다. 지식을 찾고 학문을 탐구하는 상아탑의 상징이었다. 이젠 그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는 것 같다.

지난 2000년대 초 대학들은 정보서비스 환경 개선을 목표로 인력ㆍ예산을 쏟아 부어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했다. 그러나 잘 정비된 유비쿼터스 환경 탓에 자료 구하러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줄고 자랑거리였던 수십만권의 장서도 이용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서들의 전문성에 의문이 든 시기도 이때다. 얼마 전 고려대는 사서 5명을 일반 행정직으로 업무를 바꾸고 도서관 고유업무를 아웃소싱했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돼 도서관에 사서를 줄어도 무방하겠다는 판단이 작용한 듯싶다.

관련기사



도서관 위기의 발단은 경쟁과 이윤창출이라는 과거 기업의 경영잣대가 대학에도 적용되면서부터다. 안팎으로 조여오는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력ㆍ예산 분배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대학 본부는 이용률이 떨어지는 데도 예산은 줄지 않는 도서관이 탐탁지 만은 않을 것이다.

지식을 보관하는 도서관 외형의 화려함은 투여된 자본에 비례하며 자료를 찾아서 읽고 깨달은 후 비로소 새 지식을 만드는 인간의 인지과정은 투여한 시간에 비례한다. 연구자의 연구시간 중 40%는 정보를 찾고 정리하는 데 쓴다는 최근 통계자료만 봐도 정보서비스 전문가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도서관이 제 기능을 못한다면 연구대학으로서 세계 명문대의 반열에 오르겠다는 우리 대학의 비전은 한낱 구호에 불과하다. 고장난 심장으로 세계적인 선수들이 참여하는 마라톤대회에서 상위권에 오르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한편으로는 사서들에게 묻고 싶다. 학생들의 머리에 박힌 '도서관은 공부방'이라는 등식을 깨뜨리고 연구자들의 고정관념인 '도서관보다 미국 친구가 더 빠르다'는 불신을 걷어내는 데 얼마나 노력했는지. 더 이상 베낄 게 없어 창의력에 의존해야 하는 시대, 도서관이 창의력의 원천이라는 다소 진부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이 논리로 대학을 설득하려면 사서들이 바뀌어야 한다.

디지털 환경의 특징인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기 쉬운 이용자들에게 안락한 정보의 길을 제시하는 사서와 정보 서비스의 가치를 이해하는 대학 본부가 손을 맞잡고 도서관에 활기를 다시 불어넣어야 한다. 과거에 그랬듯이 지금도 도서관은 '대학의 심장'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