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서 동북쪽 간선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40분가량을 달리면 도착하는 야스페니사르(Jaszfenyszaru) 시.
도나(독일명 도나우)강을 기준으로 강동지역에 해당한다. 헝가리의 강동지역은 농업이 주요기반이다 보니 아직도 여러 면에서 낙후됐다. 컬러TV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헝가리 공장(SEH)은 바로 이곳에 위치해 있다.
인근 사람들은 야스페니사르시를 농담처럼 `삼성시(Samsung City)`라고 부른다.
이 지역은 SEH가 입주하기 전인 지난 89년에는 전체 지역민의 15%가량이 일거리가 없어서 빈둥거리며 놀았지만 최근 실업률은 헝가리 전역에서도 매우 낮은 4%대에 불과하다. 현재 SEH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1,200명.
“야스베르니는 원래 우리나라의 면 단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SEH에서 많은 세금을 제공하면서 재정이 튼튼해져 시로 승격한 곳입니다. 올해는 시승격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조규담 상무ㆍ삼성전자 헝가리법인장)
취재팀이 방문했던 지난해 연말 삼성전자 헝가리 법인엔 마침 재무장관, 지방청장 등 유력인사들이 줄줄이 다녀갔다.
이어지는 조 법인장의 설명. “헝가리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에서도 SHE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최근 매출이 급증하면서 제품을 실어나르는 화물트럭 왕래가 빈번해지자 시정부에서 특별히 SHE 공장 뒤켠에 아스팔트 도로를 깔아줬습니다. 또 공장부지가 협소하다고 하니까 널찍한 주차공간도 마련해줬습니다.”
현지 사람들이 왜 이곳을 삼성시라고 부르는지 알만하다.
야스베르니가 삼성시로 불린다면 부다페스트 부도심권인 코니베스(Konyves) 지역엔 LG거리가 있다.
부다페스트 도심에서 영웅광장을 지나 동쪽으로 곧장 달려가면 자동차매매상이 집중포진한 지역이 나온다. 바로 코니베스. 이 곳에서 가장 번화한 4거리에 1,000평은 족히 넘을 LG전자 헝가리 판매법인(LG Electronics Magyar Kft) 사옥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헝가리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부다페스트가 팽창하자 이곳도 부도심권으로 매우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LG헝가리 판매법인 사옥은 이곳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직전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일종의 랜드마크(Land Mark)처럼 인식됩니다. 이 때문에 현지인들은 이 거리를 그저 편하게 `LG거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김윤회 LG전자 헝거리 판매법인장)
이곳 구청에서도 최근 LG거리의 인지도를 십분 인정해 LG전자 헝가리 판매법인을 중심으로 동서로 이어지는 간선도로 가로등에 `LG를 상징하는 스마일 깃발`을 줄지어 달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한국기업의 이름을 딴 도시나 거리는 헝가리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북쪽으로 160km 떨어진 무와바(Mlawa)시에는 아예 공식명칭이 `울리차 LG(LG도로)`다. 지난 99년 LG전자가 이 곳에 TV생산공장을 설립하자 시에서 감사의 뜻으로 도로명칭을 LG로 바꿨다.
“무와시 당국이 1년에 걸쳐 1,000여명의 해당 주민들이 신상명세서(우리나라의 호적에 해당하는 것)를 교체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 한꺼번에 발생할 수 있는 데도 흔쾌히 이같이 결정하더군요.”(최영규 법인장)
취재팀에겐 `LG거리, 삼성시티`라는 명칭이 마치 동유럽에 탄탄한 거점을 확보한 국내기업이 현지인으로부터 받은 훈장처럼 들렸다.
■ `최고 직장` 삼성 헝가리법인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등 동유럽국가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들은 현지 주민들에게 취업 1순위 희망처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많은 복지혜택, 동양문화가 접목된 부드러운 노사관계를 매우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헝거리 법인(SEH) 역시 이 지역 최고의 취업희망 기업. SEH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이곳 주변 25km 내에 있는 소도시 야스베니사르(Jaszbereny), 하트반(Hatvan), 야사로크살라스(Jaszarokszallas)에서까지 출퇴근한다. 근로자들의 형편이 아직은 자가용을 마련할 정도까지 안돼서 이곳 버스회사들이 새벽 6시 오후 2시, 저녁 10 등 하루 5차례씩 정기적으로 간이 정류장을 만들어 운행해 주고 있다.
형제자매 또는 부모자식이 한꺼번에 취업해 여러 공정에 나뉘어 일하고 있는 경우도 빈번하다. SEH에 간혹 결원이 발생해서 공개 모집을 하면 수백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다.
“이곳에선 SEH가 최고의 직장이다. 우리 친척들은 물론이고 이웃 사람들도 SHE가 언제 또 직원을 뽑는지 알려달라고 부탁한다.”(엠마 시로스ㆍ26ㆍ여)
어느새 삼성 헝가리법인의 취업정보는 일종의 탑시크리트(일급기밀)처럼 취급되고 있었다.
폴란드 LG전자 TV생산법인
폴란드 무와바시(바르샤바 북쪽으로 130㎞)에 자리잡은 LG전자 TV생산 법인(LGEMA)을 찾아가는 길.
눈 내리는 무와바 시내로 접어들자 50m마다 선명한 `LG` 간판이 서 있다. `LG 타운`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공장에서는 마침 최영규 법인장(상무)이 유작 에드마르드 노조위원장과 크리스마스 파티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최 법인장은 “연말마다 직원용ㆍ직원 가족용 성탄 파티를 따로 열어주고 자매 결연을 맺은 고아원에 선물도 전달하고 있다. 이 같은 세심한 배려가 노경(勞經) 화합과 지역 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LGEMA는 `근로자와 지역 사회 존중`이라는 LG 이념을 폴란드에서 실현, 주목 받고 있는 법인이다. 이 법인은 법인장과 노조와 정기 대화, 노경협의회를 통한 경영 상황 브리핑, 전종업원과 분기별 대화 등을 통해 근로자들의 애로 사항을 해결해주는 한편 주인의식도 키우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 2002년에는 노사화합 선언을 이끌어내고 분규없는 기업체로 발돋움했다.
“정규 직원 400여명 중 노조원은 150여명에 불과하다. 요구 사항만 합리적이라면 웬만하면 들어주기 때문에 직원들이 노조 가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김정영 금융ㆍ관리 담당 차장)
이 법인의 전체 직원은 675명. 이 가운데 장애인 106명을 고용, 현지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또 지역 학교에 TV와 기자재 지원, 현지 10개 대학과 인턴십 프로그램 운영 및 장학금 지원, 시각장애아 수술 기금 마련, 태권도대회 지원 등 각종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돈독한 유대 관계를 쌓고 있다. 연간 기부금만 10만달러에 달한다.
최 법인장은 “지난해 10월 디지털TV 공장 준공식에는 EU 정상회의 때문에 불참한 총리 대신 마렝 폴 부총리가 와서 감사패를 전달했다”며 “폴란드에서도 `사랑해요 LG` 이미지를 심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부다페스트(헝가리) 김형기기자/바르샤바(폴란드)최형욱기자 kkim@sed.co.k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