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뉴스 포커스] 메르스 미신고 솜방망이 처벌뒤엔 '의피아' 있었다

■ 병원에 벌금 고작 200만원, 알고보니

1997년 감염병예방법 제정때 의사·복지부 반대로 수위 낮춰

1번 환자 들렀던 4곳 병원 중 단 1곳도 신고 안해 피해 키워

감염병관리위원 절반이 의사… 의료정책 결정 좌우



국내 첫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환자는 지난 5월12일부터 17일까지 총 4곳의 병원을 돌아다녔다. 그러는 사이 메르스 바이러스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갔으며 결국 지금 대한민국은 메르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1번 환자가 들렀던 병원 중 1곳이라도 의심 신고를 했다면 지금과 같은 메르스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기에는 보건당국이 병원에 신속한 지침을 내리지 않은 게 1차 책임이지만 병원들이 매출감소 등을 우려해 신고를 기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병원이 신고를 꺼려 지금과 같은 국가재난 사태를 야기했더라도 병원이 받는 처벌이라고는 단지 200만원 이하의 벌금뿐이라는 사실이다. 10여년 전에는 50만원이었다. 워낙 벌금이 적다 보니 실제 재판과정에서 재판부가 전후 사정을 감안하다 보면 이마저도 줄어든다. 실제로 2010년 이후 감염병 신고를 하지 않아 처벌된 의사 7명 중 6명이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 솜방망이 처벌기준이 미흡한 초동조치를 야기하는 셈이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처벌기준이 마련된 것은 의사들이 의료정책 수립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의료소송 전문인 신현호 변호사는 20년 전 전염병예방법 개정 검토위원으로 참여했다가 처벌기준 강화 요청이 무산된 경험을 이같이 털어놓았다. 신 변호사는 "당시 위원회 위원 가운데 변호사는 나 하나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의사였다"며 "감염병이 발병하면 국가적 재난이 될 수 있는 만큼 미신고 처벌을 강화하고 신고시 보상을 강화하자는 주장을 했지만 당시 의사들을 비롯해 보건복지부 직원조차 반대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질이 발생해도 대장염이라고 진료기록을 작성하도록 의료기관들이 의사를 교육한다는 것은 의료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의료정책을 의사들이 결정하는 구조에서 어떻게 의료기관에 강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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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조는 지금도 여전하다. 정부가 국내 감염병 정책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2012년에 만든 감염병관리위원회는 전체 위원 20명 중 10명이 의사다. 의료정책을 결정하는 위원회의 과반을 의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정부 측 인사 2명도 의사자격 소지자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복지부가 일종의 패배의식에 빠져 주도권을 스스로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 분야 정책수립을 주도하지 못해 의료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공개한 외부용역과 물품조달 계약 자료를 보면 국가 차원의 질병관리 정책은 물론이고 의료 전문성이 핵심이 아닌 정책까지 병원이 연구를 도맡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일례로 자살위기 긴급전화 통합 대응체계 구축 방안을 연구하는 곳은 명지의료재단이고 한의사 전문의 제도 시행에 대한 평가 방안은 당사자인 한의학회가 연구하고 있다.

신 변호사는 "의료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의사들에게 내준 채 정부가 방임한다면 감염병 같은 국가재난 사태에 대한 통제와 관리는 불가능하다"며 "적어도 감염병만은 국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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