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두고두고 기억돼야 할 이름들

지난 65년 영국에서 비틀스(Beatles)의 훈장 때문에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해럴드 윌슨 수상은 외화획득 등 국가에 기여한 공로로 수훈을 추천했고 왕실은 4명의 비틀스 멤버에게 MBE 훈장을 내렸다. 그러자 기존 MBE 수훈자들의 훈장반납 등 거센 비판과 반발이 뒤따랐다. 훈장의 품격과 존귀함을 떨어뜨렸다는 이유에서였다. MBE는 격이 높지 않은 훈장이며 비틀스는 그것을 받을 만했다. 그들은 세계 팝음악의 전설이 된 존재 아닌가. 그러나 MBE 수훈자들에게는 훈장과 자신들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8·31'훈장 반납해야 마땅 경남 마산 합포고의 김용택 선생님. 38년간의 교단생활을 마감하고 정년퇴임하는 그는 옥조근정훈장 수훈대상자지만 최근 훈장을 포기했다. 열악한 교육현실 개선에 역할을 못해 훈장받는 게 부끄럽다는 이유다. 하지만 평생을 바른 교육에 헌신하고 떠나는 순간까지 교육현장을 걱정하는 김 교사야말로 수훈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모독 당한 훈장, 부끄러워 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지난 1월 훈포장을 받은 8ㆍ31 부동산대책 유공자들이다. 상을 받은 공무원은 8개 부처 30여명으로 이중에는 승진자도 많다. 그로부터 채 1년도 안된 지금 부동산시장은 어떤가. 집값 급등 현상은 서울 강남과 신도시에서 강북과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됐다. 부동산 열풍이 점(點)에서 면(面)으로 번지며 더 악화된 것이다. 정부가 추가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은 시큰둥하다. 백약이 무효다. 정책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탓이다. 부동산정책은 참담하게 실패했고 무주택자들은 절망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8ㆍ31훈장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받은 게 됐다. 벌 받아도 시원찮을 사람들이 훈장 달고 승진까지 했으니 기가 막힌다. 그 훈장은 명예가 아닌 멍에다.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내놓는 게 마땅하다. 그것이 훈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러나 그들은 조용하다. 훈장을 내놓았다는 사람도 없다. 일그러진 훈장의 가치를 되살리려면 영국에서처럼 훈장반납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그들은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정책실패가 왜 우리 책임이냐,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장관ㆍ부총리 등 출세할 만큼 한 사람들조차 임명권자의 코드에 맞추느라 소신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판에 이들 직업 공무원들에게만 옛 선비들처럼 ‘전하,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더 큰 책임은 잘못된 철학과 정책방향으로 이들을 부린 사람들이 져야 한다. 정책실패자 이름 모두 공개하자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과 부동산정책을 주도하고 홍보해온 청와대 정책실장ㆍ보좌관ㆍ비서관, 국무총리ㆍ경제부총리와 건설교통부 장관 등 관련부처 고위관계자들이 거기에 해당한다. 여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책의 원인은 그들이 부동산을 경제보다는 정치적 시각으로 접근한 데 있다. 부동산은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고 그래서 시장원리보다는 규제와 위협이 앞섰다. ‘강남이 불패면 대통령도 불패다’ ‘세금폭탄이라고 하는데 아직 멀었다’ ‘종부세는 초정밀유도탄’ 등의 발언이 이를 대변한다. 게다가 효과부터 떠벌리는 ‘입방정’과 걸핏하면 남 탓을 하는 몰염치한 태도까지 겹쳐 정책은 완전히 웃음거리가 됐다. 이 정부가 부동산을 잡기는 ‘하늘이 두쪽 나도’ 힘들 것 같다. 상황이 이쯤 됐으면 실책을 인정하고 방향을 수정해야 하는데도 ‘참여정부의 시스템이 가장 우수하다’ ‘지금 비싼 값에 집사면 낭패’ ‘부동산세력이 문제’라는 잠꼬대 같은 소리가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건교부 장관 등 일부 인사가 물러난다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ㆍ현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동산정책 관련자들의 이름을 모두 공개해 두고두고 기억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실패의 반복과 그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을 막을 수 있다. 그 일은 시민단체의 몫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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