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타계한 '9개 목숨 가진 고양이' 아라파트

11일 타계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평생을 독립운동의 영웅이자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살아온팔레스타인의 국가적 영웅이다. 팔레스타인 투쟁운동의 주역인 파타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창설을 주도하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의 자리에 올라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까지 했으나말년에는 가택연금을 당한 데 이어 내부로부터의 도전도 받는 등 생을 마감할 때까지 긴장과 투쟁이란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운의 영웅이기도 했다. 아라파트는 1929년 8월 4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슬람교 수니파 상인의 아들로태어난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정작 본인은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선전ㆍ선동술에 능한 `일벌레'로 지도자의 꿈을 꿨던 것으로 알려진 아라파트는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에 참가했으며 쿠웨이트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1958년에는 대(對) 이스라엘 투쟁단체 파타운동을 창설했다. 그는 이어 1969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창설을 주도하며 의장에 취임했으나아랍국가들조차 그에게 별 도움을 주지 않아 이후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튀니지등지를 떠돌며 투쟁을 이어가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체포 위기에 몰렸을 때마다뛰어난 변장술로 위기를 넘겨 `사막의 불사조' `9개의 목숨을 가진 고양이' 등의 별명도 얻은 것도 바로 이때이다. 뛰어난 언변과 외교력으로 1974년에 유엔에서 PLO를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조직으로 인정받는데 성공한 아라파트는 1987년 강경투쟁노선에서 협상전략으로 선회하면서 이스라엘과 협상에 나서 이듬해인 1988년 12월에는 무장투쟁 포기와 이스라엘 생존권 인정을 선언하면서 13년 간 계속돼온 미국의 PLO 대화금지 종식을 이끌어냈다. 아라파트는 1991년 포괄적 중동평화방안 마련을 위한 마드리드 협상에서 실패를맛보기도 했으나 1993년 단독협상을 통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예리코의 자치를 이끌어낸 오슬로 평화협정을 성사시켰다. 이듬해인 1994년 자치정부 출범과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금의환향', 1996년 초자치정부 초대 수반으로 선출된 아라파트는 1994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당시 총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안정을 구가했으나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1995년 11월 극우파에 의해 살해되면서 또다시 시련에 봉착하게 됐다. 이스라엘 극우파의 득세와 이에 따른 유혈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라파트는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2000년 7월 이른바 `캠프 데이비드' 협상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실패하면서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의 강력한 견제에 시달리게 된다. 아라파트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2001년 12월부터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자치정부 청사에서 연금생활을 시작했으며 결국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판정을 받고 난 뒤에야 자치정부 청사의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아라파트는 연금생활 속에서도 정적을 제거하는 등 권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못했으나 결국 결국 건강악화라는 내부의 적에게 무릎을 꿇고 팔레스타인 국가건설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최이락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