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불과 1년전이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월드컵이 개막되기 전까지만 해도 `월드컵 4강 진출`은 그저 꿈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꿈★은 이뤄졌다. 그래서 우리 모두 자신감과 자긍심으로 충만했다. 그 때만 해도 우리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제4강`이라는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가 샘솟았다.
하지만 1년 사이에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정말 살기 힘들다`는 신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IMF 외환위기후 이처럼 장사가 안 되기는 처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기업부도수가 2년여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는가 하면 올 1분기 성장률은 3%대로 내려앉았다. 이렇게 가다가는 성장은 커녕 분배문제 개선도 공염불로 그칠 것 같다.
초등학생 딸 아이는 “여러분! 살림살이 많이 좋아졌습니까?”라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배운 우스개 질문을 자주 던진다. 하지만 딸 아이의 재롱에도 쓴 웃음만 나온다. 암담한 현실은 참을 수 있다.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갈수록 무거워진다.
왜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좌표와 방향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갈 지 걱정스럽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오죽하면 고위 공무원 입에서 “30년 공무원 생활에 요즘처럼 심각하게 나라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는 자탄의 소리도 나올 정도일까.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은 바로 정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스(NEIS) 도입문제 등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노라면 대한민국에도 정부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나이스 문제에 대해 불과 몇 시간만에 말을 뒤집고, 새만금 보존을 요구하는 `삼보일배(三步一拜) 시위대에 참여한 장관에게 대통령은 경고조차 하지 않는다. 정부의 역할은 우리 사회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한편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가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장관조차 이해관계집단의 투쟁대열에 떠밀려 다니는 바람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만 존재할 뿐이다.
희망을 제시하는 노력은 법과 원칙을 엄정하게 세우고 집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에게 당부한다. 1년전 히딩크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고 요구하지는 않겠다. 그저 희망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정문재 경제부 차장 timoth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