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분단시키겠다는 시도는 1945년이 처음은 아니다. 대륙과 해양세력의 중간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양쪽에서의 침탈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다.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수립된 후 최초의 분단 획책은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다. 초반의 승기를 잃고 수세에 몰린 일본(왜)은 중국(명)과의 협상에서 남부의 분할점령을 요구한다. 패전으로 이런 기도는 무산됐다. 두 번째도 20세기 초 러시아와 분쟁 중에 일본이 제기했다. 39도선 혹은 38도선을 경계로 분할안이 나왔다. 이번에는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한반도 전체를 지배했다. 세 번째는 1945년 러시아(소련)와 미국 사이의 분할이다. 결국 38도선에서 허리가 잘렸고 현재도 그렇다. 8·15 해방 후에 민족이 일치단결했으면 분단을 막을 수 있었을까. 여운형(1886~1947)은 서울에서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좌우합작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외세의 강압을 물리치지도 내부의 의견차이를 좁히지도 못했다. 사진은 여운형의 계동 집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음식점이다. 원래는 앞 표지석부터라는데 도로가 나면서 절반이 사라졌다. 우리나라 처지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