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국회에서 "현재 경기가 갈수록 더 나빠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추가경정예산편성에 대한 당위성을 밝힌 것이지만 이 발언의 이면에는 다음달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를 향한 압박이 내포돼 있다는 게 정부와 한은 안팎의 해석이다. 재정확대(추경)와 보조를 맞춰 통화확대(기준금리 인하)에 나서달라는 속내를 내비친 발언이라는 얘기다.
사실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는 현 장관의 발언은 전날 한은이 발표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속보치와 비교할 때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은은 전날 1ㆍ4분기 GDP가 전기 대비 0.9%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당초 한은의 예상치(0.8%)나 정부 예상치(0.7%)를 다소 웃도는 수치다.
더구나 한은을 비롯한 주요 경제전망기관들은 올해 경제를 '상저하고'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한은의 경우 올해 하반기에는 전기 대비 성장률이 1.0%를 찍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반기에는 0%대 성장을 벗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 2.6%는 하반기에 전기 대비 1.0%의 성장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숫자에 집착하기보다는 전반적인 경기활력 저하에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재부는 한마디로 한은의 속보치 자체를 무시하는 모습이다. 한 고위 관계자는 "한은이 올해 2.6% 성장을 전망할 때 이미 1ㆍ4분기 0.9% 성장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며 "GDP 잠정치는 속보치보다 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속보치'보다 잠정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매우 주목할 부분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1ㆍ4분기 성장률이 다소 높았던 것은 지난해 성장률이 낮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가 작용했다"며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았다고 해서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생각은 오판이며 중요한 것은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돌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기재부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경제 대국인 미국도 성장률이 2%에 이른다"며 "한국은행 스스로 잠재성장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2.6%로 전망을 해놓고 기준금리를 낮추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진작 내렸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특히 하반기 경제에 '호재'보다는 '악재'가 많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중심에는 '엔저'와 '남북관계 악화'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 엔저로 인한 피해가 가시화되는 조짐이 곳곳에서 엿보인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1ㆍ4분기 대일본 수출이 감소했다"며 "이달부터는 일본과 경합하는 중국ㆍ미국ㆍ유럽 시장 등에서 엔저로 인한 수출감소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제이(J)커브 효과'를 감안하면 한층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J커브 효과란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출이 일단 감소하다가 3~6개월 후에야 증가하는 현상이다.
현 장관도 이날 경기악화의 요인으로 '엔저'를 들었다. 때문에 기재부는 여전히 한은의 금리인하를 기대하고 있다. 기재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엔저 등 대외여건을 감안하면 하반기 경제는 생각보다 훨씬 더 고꾸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이나 경쟁 국가들의 성장률과 비교할 때 우리 경제가 2%성장에 그친다는 것은 사실상 정체와 마찬가지"라며 "추경효과를 극대화하고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금리인하가 더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처럼 한은의 금리인하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실제로 한국은행이 다음달 금리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한은 안팎의 분석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동결에서 인하로 금리정책을 바꾸려면 그에 맞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지난번 금리동결 이후 경제상황에 대한 스탠스를 바꿀 만한 돌발변수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