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여름,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대서양 상의 자그마한 섬을 놓고 전쟁을 벌였다. 19세기부터 영국령이었던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을 주장해온 아르헨티나가 82년 4월에 군을 투입, 점령했고 이에 영국은 해군을 파병, 74일만에 섬을 탈환한 전쟁이다.이 전쟁이 세계역사에 주는 의미는 앵글로색슨계 국가에 시장 경제가 확산된 반면, 중남미 국가에 극심한 정쟁과 경제불안이 가중되면서 두 세계가 확연하게 분리됐다는 점이다.
당시 마가렛 대처 영국총리는 전쟁 승리에 따른 여론의 지지에 힘입어 탄광노조와 1년에 가까운 파업에 한치도 물러나지 않고 싸워 영국병의 근원이었던 노동조합을 꺾었다.
대처는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영국 경제에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했다.
이에 비해 패전한 아르헨티나는 군부독재의 유산을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회복시켰지만, 경제정책에는 실패했다. 사회 곳곳에는 페론주의가 만연, 엄청난 재정적자가 발생했고, 연간 1,000%가 넘는 살인적인 인플레에 허덕였다.
주목할 점은 그 후의 일이다. 90년대말 대처를 누르고 집권한 40대의 노동당 당수 토니 블레어는 대처의 개혁주의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영국이 지난해 전세계가 동시침체의 늪에 허우적일때도 플러스의 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권이 바뀌어도 경제정책의 틀이 유지된 덕분이다.
반면 아르헨티나에는 숱하게 정권이 바뀌어도 남미식 사회주의에 연연하며, 고통스런 경제개혁을 피했다.
89년에 집권한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현지 페소화를 달러에 고정시킴으로써 물가는 잡았지만, 페론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정부의 복지비용과 국민들의 소비 욕구는 외국에서 돈을 빌려와 메웠다.
지난해 8월 포클랜드 전쟁이후 처음으로 영국의 블레어 총리와 아르헨티나의 페르디난도 델라루아 당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다.
델라루아 대통령은 한때의 적에게 손을 내밀며 경제 지원을 요청했지만, 몇 달후 퇴진하고, 아르헨티나는 곧바로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경제가 잘되는지 하는 문제는 정치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절대적으로 달려있다.
정권이 변해도 개혁정치를 유지한 영국과 경제의 고질병을 치유하지 못한 아르헨티나의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 지가 분명해진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사회곳곳에 도져 나오는 개혁 이반 움직임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