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하고 때로는 흉포한 범죄자를 상대해야 하는 검사는 늘 긴장과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고단한 직업이다. 피의자를 상대로 피말리는 진실 게임을 해야 한다. 그래선지 ‘검사’하면 사람들에게 강퍅한 저승사자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검사들이 죄에 대한 처벌을 넘어 안타까운 범죄 피의자나 피해자를 발벗고 도와주는 경우도 적지않다. 검찰은 25일 올 한해 잔잔한 감동을 남긴 검사들의 사건 수사 사례를 발표했다. 배가고파 슈퍼에서 빵을 훔친 노동자에 일자리를 만들어주는가 하면 부부싸움끝에 엄마를 잃고 아빠는 철창에 갇힌 아이의 생계와 학비를 주선해주기도 했다.
◇한국판 ‘장발장’ 구제=부모가 어릴적 이혼해 아버지와 생활하던 전모(27)씨는 아버지의 잦은 음주와 폭행을 견디다 못해 가출, 혼자 살며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전씨는 올 5월 초 건축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며칠을 굶어야 했다. 그는 새벽에 슈퍼마켓 유리창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훔치려다 주인에게 잡혔다. 죄명은 특수절도미수. 서울남부지검 소병진 검사는 전씨가 자란 환경이나 범행 경위를 감안, 처벌보다 직업을 찾아주고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소 검사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를 남부지검 범죄예방협의회에 알선해주도록 요청했고 결국 전씨는 택시회사 직원으로 채용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됐다.
◇ 조선족 어머니 잃은 딸에 학비 지원=김모(14)양은 지난해 1월 돈을 벌어오겠다며 한국으로 갔던 어머니를 잃었다. 중국동포인 어머니 박모씨가 한국으로 들어와 일하다 사귀던 남자에게 살해당한 것. 졸지에 고아가 된 김양은 생활비가 끊기자 중국에서 다니던 중학교를 그만둬야 했지만 이 사연을 전해들은 서울동부지검 명재권 검사의 도움으로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명 검사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지원을 의뢰했고, 센터측은 생활비와 중ㆍ고등학교 학비 등 1,088만원을 지원해줬다.
◇ 부모 잃은 청소년들 학업ㆍ생계 지원=서울북부지검 김재구 검사는 올 10월 말다툼 중 남편이 아내의 목을 졸라 살해한 사건을 수사하게 됐다. 김 검사는 피의자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지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마저 구속된 자녀를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었다.
그는 서울북부피해자지원센터에 자녀에 대한 지원을 의뢰했고, 센터측은 이들의 집을 방문해 쌀과 라면, 김치 등 생필품과 긴급 생계비를 전달했다. 센터측은 이후 매월 50만 원씩 6개월 간 생계비 300만 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수능 시험을 앞두고 있던 피의자의 딸에게는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방과후 공부방을 알선해줬고, 정신적인 충격을 이길 수 있도록 사회복지사, 상담위원들과 다리를 놔줬다.
이밖에 야간주거침입절도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23)가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고 보육원에서 자랐고 아버지를 한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어한다는 사연을 듣고 호적조회 등을 통해 입원 중인 피의자의 아버지를 찾도록 해준 사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