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위기의 은행] <1> 끊이지 않는 정치금융

"빽 없으면 승진 꿈도 못꿔"… 연줄·투서로 자리 나눠먹기<br>인사시즌 때마다 조직 사분오열<br>전직 임원까지 대놓고 자리 요구<br>현안 뒷전 권력 다툼도 비일비재


"열심히 일하면 임원도 되고 최고경영자(CEO)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은행들에서는 이런 공식이 적용되지 않아요. 그러니 외부에 줄대고 횡령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금융감독당국 고위관계자의 말은 우리나라 은행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모든 임원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은행에서 부행장이나 계열사 CEO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나 청와대에 든든한 '빽' 없이는 힘들다는 게 은행권의 정설이다. 주요 시중은행에서 국책은행까지 인사청탁은 끊이지 않는 골칫거리다. 심지어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이 덜했던 신한이나 하나금융까지도 정치색에 오염되고 있다.


고위인사들이 외부 힘에 휘둘리다 보니 내부 조직문화는 무너지고 정치금융에 의존하는 상황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연줄과 투서ㆍ파벌로 세력 형성…나눠먹기 인사 비일비재=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은 정권과 수명을 같이했다. 정권이 바뀌면 그에 따라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교체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외풍을 덜 탄 신한과 하나금융은 라응찬 전 회장과 김승유 전 회장이 장기 집권했지만 KB와 우리금융은 극심할 정도의 CEO 리스크를 겪었다.

KB금융은 황영기 전 회장에서 지난 2009년 외부에 줄을 댄 강정원 전 행장으로 회장이 바뀌려다가 강 전 행장의 자진사퇴로 끝났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어윤대 전 국가브랜드위원장이 2010년 회장에 올랐다가 정권이 바뀌자 올 들어 임영록 회장으로 교체됐다. 우리금융도 마찬가지인데 박병원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박해춘 행장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물러났고 후임으로 들어온 이팔성 회장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퇴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은행들의 정치게임의 또 다른 원인으로 대등합병을 들고 있다. KB와 우리은행처럼 대등합병을 한 곳들은 기본적으로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선다는 얘기다. 국민은행은 옛 국민과 옛 주택은행 출신이 은행장에서부터 임원ㆍ노조위원장까지 자리배분을 고려해 인사를 해야 할 정도다. 이건호 행장 취임 이후 정도가 덜해졌다고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나눠먹기'에 대한 정서가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도쿄지점장도 통합 이후 줄곧 옛 주택 출신이 자리를 차지해왔다. KB금융의 한 관계자는 "같은 출신이 계속 자리를 맡다 보니 견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일본의 금융관행상 도쿄지점장이 모지점 역할을 하는데 번갈아 했으면 몇 년간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크게 보면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이 은행을 양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행장이 상업 출신이면 수석부행장은 한일 출신이 맡아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규칙이다. 정부가 대주주인 조직의 특성상 외부에 줄을 잘 대면 임원이나 계열사 CEO로 갈 수 있다는 점이 조직 분위기를 크게 망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신한의 경우 상황은 다르지만 전직 임원들이 조직 흔들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틀에서는 외부 힘을 빌리는 꼴이다. 신한금융 관계자조차 "일부 사람들의 발언은 자기를 대우해달라거나 자리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폄하할 정도다.

관련기사



라 전 회장의 그림자가 아직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점도 신한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한동우 회장이나 신한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하지만 금융권이나 당국에서는 라 전 회장이 아직도 신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조준희 현 행장이 다음달에 임기가 만료되는 가운데 일부 임원과 계열사 CEO들은 은행장을 꿈꾸면서 외부에 줄을 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일부 임원은 정치권 인사들과 과도하게 접촉이 많아 정권 차원에서 경고를 받았다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내부 권력 다툼에 은행 현안은 뒷전…지주 회장과 행장 갈등 연출=외부 힘을 빌리는 것은 단순히 인사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조직경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당장 임원이나 CEO가 임명권자의 의중과 다른 사례도 심심찮게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지주 회장이나 은행장 입장에서는 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외부 줄을 타고 내려오거나 임원을 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경우 경영갈등은 물론 업무공백까지 발생한다.

실제 A금융지주는 현재 은행장과 지주 회장이 미묘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은행장이 자체 노선을 견지하면서 경영 부문에서 회장과 다른 의견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속된 말로 은행장이 회장 말을 듣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B금융지주는 이 같은 갈등이 실제로 드러나기도 했다. 외부 공식행사에서야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회장과 은행장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회장이 점찍어둔 은행장과 실제로 된 사람이 달랐던 탓이었다.

C금융지주도 은행장과 지주 사이가 최근 껄끄러운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검사 등을 두고 책임을 누가 지느냐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김영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