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공판중심주의 시범법정에 가보니…

'예-아니오' 대답 줄어들고 판사-피의자 대화 늘어나고<br>위압적 분위기 없어져 진술·증언 중심 재판 진행<br>검찰 조서 효력 약화속 판사들 법정위상 높아져

공판중심주의 시범법정에 가보니… '예-아니오' 대답 줄어들고 판사-피의자 대화 늘어나고위압적 분위기 없어져 진술·증언 중심 재판 진행검찰 조서 효력 약화속 판사들 법정위상 높아져 이혜진기자 hasim@sed.co.kr 김홍길기자 what@sed.co.kr 관련기사 • "공개 재판 건수 대폭 줄여야"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424호 법정. 이곳에서는 이날 오후 2시부터 한겨울에 찾아온 80대 노부모를 냉방에 방치해 결국 아버지를 숨지게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박모씨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이른바 ‘냉방보일러 사건’ . 이 법정은 지난 2월부터 이용훈 대법원장이 강조해 온 공판중심주의 재판을 실천하고 있는 시범법정이다. 다른 법정과의 차이점은 찾아 볼 수 없었지만 재판진행은 확연히 달랐다. ◇ 법정진술 최우선 존중 “이 법정에서 편안하게 말하세요.” K 부장판사는 재판 시작과 함께 마이크를 잡고 피의자를 향해 말했다. “예, 아니오로만 짧게 대답하세요”라는 위압적인 분위기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선고이전에는 무죄추정이라는 원칙에 따라 피의자를 철저히 배려하려는 재판부의 고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사측 심문이 시작됐다. 검사측은 아들 박모씨가 사업을 물려받지 못한 불만을 품고 직접 자신의 집 보일러를 끈 채 집을 나가 결국 아버지를 숨지게 했다는 내용의 피의자 조서를 읽어 갔다. 검사측 주장은 “재산문제가 발단이 돼 아버지를 고의적으로 죽게 방치했다”는 설명이다. 변호인측도 혐의를 조목조목 부인하면서 양측간 공방은 치열해졌다. 재판부가 나섰다. K판사는 “피의자에게 물어 보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K판사는 검찰 조서내용에 근거해 피의자를 상대로 직접 질문을 통해 의문점을 확인해 들어갔다. 검찰 조서중심의 일반 법정에서는 판사들이 대부분 조서내용을 토대로 예, 아니오로만 대답할 수 있도록 짧게 질문을 하는 것과 달리 구체적인 분위기까지 읽으려는 질문도 던졌다.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1시간 동안 진행된 법정에서 1/3 정도가 판사와 피의자간 대화로만 이뤄졌다. ◇ 검찰서 판사중심 재판으로 무게이동 공판중심주의 핵심은 법정에서의 진술이 최우선이다. 따라서 공판중심의 재판이 이뤄지면 조서나 서류가 아니라 법정에서의 진술과 논리, 증거가 재판을 좌우하게 된다. 이 때문에 검찰측은 조서의 효력이 약화되고, 재판을 방해할 수 있어 수사에 더욱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판사들은 법정에서 나오는 당사자 진술과 증언을 중심으로 재판하기 때문에 위상이 더욱 높아지게 됐다. 더구나 최근 들어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ㆍ구속영장 심사 강화로 영장 기각률이 높아져 검찰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는 상황이다. 서울지검의 한 차장검사는 “증언과 자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직폭력이나 성범죄, 뇌물수수 사건에서는 국가의 범죄소추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고 사정기능이 마비돼 법질서의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며 “조사방해죄 등과 같은 보완조치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 검사ㆍ변호사 모두 "어렵다" 공판중심주의 시범 재판을 경험해 본 검사와 변호사들은 모두 “어려웠다”는 반응들이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기존에는 기록을 미리 만들어 예, 아니오 식으로 대답을 유도했지만, 바뀐 법정에서는 재판부가 피고인과 증인들의 자유로운 발언을 용인하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무척 힘들다”고 토로했다. 특히 검찰이 피의자 신문조서에 대해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증거효력을 잃을 수도 있어 검찰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변호사 역시 공판중심 법정에 적응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어려운 점은 형사재판의 경우 검찰이 공소장만 제출하고 나머지 서류를 제공하지 않으면 방어권 행사가 제약되는 것이다. 개업 4년차인 한 변호사는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만 보고 첫 공판에 들어갈 경우 피의자 방어권을 확보하는 데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첫 공판전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모여 공판협의를 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6/10/0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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