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디지털콘텐츠산업 보호해야

위정현 <중앙대 교수ㆍ경영학>

지나간 역사를 볼 때마다, 특히 실패했던 쓰라린 역사나 패배했던 가슴 아픈 역사를 반추할 때마다 우리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 만약 에도시대 말기에 일본이 쇄국을 고집하고 반대로 조선이 먼저 개국을 했더라면, 만약 지난 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개헌으로 가지 않고 그대로 퇴임했더라면, 만약 10ㆍ26 당시 정승화 전 참모총장이 체포를 면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그렇게 됐다면 한국이 서양 문물을 먼저 받아들여 반대로 일본을 식민지로 삼았을지도 모르고, 박정희 이후에 민간정부가 들어서 5ㆍ17과 12ㆍ12 같은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며, 80년대 민주화의 봄은 결실을 맺었을지 모른다. 中·日업체들 우리기술로 성장 역사학자들은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필자 같은 범인들은 만약이라는 가정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는 한다. 그런데 만약이라는 가정이 과거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온라인게임을 비롯한 최근의 디지털콘텐츠산업을 보고 있으면 자칫 우리의 후대가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3월 말 일본의 겅호라는 한국의 게임을 가져다 서비스하던 기업이 오사카 헤라클레스시장(한국의 코스닥과 유사)에 상장해 현재 시가총액 2조3,000억원의 기업이 됐다. 이 규모는 한국의 간판 기업인 NHN의 시가총액 1조6,000억원이나 NCSoft의 1조5,000억원을 가볍게 뛰어넘는 금액이며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게임회사인 스퀘어-에닉스의 3조3,000억원에 육박하는 액수이다. 하지만 정작 이 게임을 수출한 그라비티는 시가총액 2,500억원에 그치고 있다. 이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낼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악몽은 중국에서도 있었다. ‘미르의 전설2’라는 국내 게임을 수입해 중국 게임시장을 석권한 중국의 샨다라는 기업은 그 후에도 한국 게임의 수입으로 중국 최대의 게임사가 되고 마침내는 나스닥 상장까지 달성했다. 그리고는 아예 미르의 전설2의 판권을 소유한 한국 개발사를 1,000억원에 매입해버렸다. 이 회사의 천톈차오 회장은 재산 2조원으로 올해 중국 500대 갑부 중 1위에 올라 있다. 분명 한국의 게임을 처음 수입할 당시에는 한국이 거인이었고 중국이나 일본 기업이 소인이었는데 어느 순간에 거인과 소인이 뒤바뀐 것이다. 한국 게임사가 이런 현실에 직면한 것은 거시적인 글로벌 전략이 부재한 채 오직 단기적 이익 추구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같은 개도국시장에서의 해킹이나 불법복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중국시장에서 한국의 한 유명 게임의 해킹서버는 무려 2,0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냥 눈을 뜨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의 지적재산이 도둑질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심각한 상황인데도 정부의 각 부처는 전근대적인 분할구조하에서 자신의 영역확장에 여념이 없다. 정부 전략委 설치 서두를 때 디지털콘텐츠산업의 특성은 기술과 장르의 융합성이다. 게임산업의 경우에도 문화관광부를 비롯해 정보통신부ㆍ산업자원부ㆍ과학기술부ㆍ교육인적자원부 등 거의 모든 부처와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국가정보원조차 해외에서의 한국 게임 해킹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고 있다. 이런 융합성에서 디지털콘텐츠는 제조업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각 부처의 혼선과 갈등 속에 이를 통제, 지휘할 전략 사령부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름이야 문화콘텐츠(문화부)건 디지털콘텐츠(정통부)건 상관없다. 그냥 한국 디지털콘텐츠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이끌고 갈 수 있는 부처 이기주의를 뛰어넘어 지휘할 수 있는 참모본부가 있으면 된다. 지금이야말로 디지털콘텐츠 전략위원회의 깃발을 올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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