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산업은 환란 후 크게 두차례의 ‘빅뱅’을 거쳤다. 환란 직후 지난 2001년까지 대형 시중은행들이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도에 따른 후폭풍을 맞아 합쳐졌고 2002년 이후 카드 사태와 가계ㆍ중소기업 대출 부실로 또 한차례 짝짓기가 진행됐다. 97년 말 33개에 달했던 은행은 19개까지 감소했고 2,101개였던 전체 금융기관 수도 1,358개로 줄어들었다.
이처럼 극심한 구조조정에도 불구,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후진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은 세계 60위권에 그치고 가계대출에만 의존하는 ‘전당포식 영업’이 계속되고 있다.
증권사들도 수입의 70% 가까이를 단순 중개 수수료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내수부진으로 금융권의 건전성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실물 부문을 이끌어가야 할 판에 ‘쏠림 현상’에 급급,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금융권의 구조조정을 ‘생존을 위한 필수사항’이라고 적시하며 인수합병(M&A) 필요성을 강력하게 피력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금융권의 움직임도 이 부총리의 발언과 맥을 같이한다. 은행권의 경우 제일은행 매각과 맞물려 후속 M&A가 구체화한 형태로 나타날 듯하다. 화살은 외환은행으로 향하고 있다. HSBC는 제일은행 인수경쟁에서 밀려날 경우 외환은행 인수에 적극 나설 전망이다.
지주사 출범을 앞두고 대한투신 인수 등 대형화를 추진 중인 하나은행도 다른 은행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나은행은 예전부터 제일은행 및 외환은행과의 합병에 관심을 보여왔다.
금융권에서는 M&A 바람에 맞춰 국민은행도 다른 은행을 추가로 인수하거나 매머드급 짝짓기를 시도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2금융권은 미풍에 그쳤던 구조조정 바람이 올해에는 강력한 형태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심에는 증권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LG증권 및 대투ㆍ한투에 이어 3~4개 중소형 증권사들이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A증권의 한 임원은 “고부가가치 상품은 외국계 증권사들이 독식하고 국내사는 개인 수수료에만 의존하는 게 현실”이라며 “특히 일부 증권사들은 채권투자에만 의존하는 등 3~5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골드만삭스처럼 대형 투자은행(IB)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국내사들끼리 합쳐본들 제대로 된 IB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외국 투자은행과의 지분제휴 등을 통해 선진기술을 적극 흡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험사들도 M&A 타깃이다. 2단계 방카슈랑스와 맞물려 벌써 M&A 기운이 농익고 있다. 메트라이프생명이 SK생명을 인수한 데 이어 중소형 손보사간 합병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영두 그린화재 사장은 최근 “중소형사 3~4개가 합쳐져야 경쟁력이 있다”며 M&A 추진을 선언한 상황. 은행권의 보험사 인수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삼성생명과 합작 생보사를 만드는 대신 단독 보험사를 설립하거나 기존 보험사를 인수하는 방식을 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은행도 방카슈랑스 전용 생보사가 있지만 금융지주회사를 만들기 위해 중대형 생보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중형급인 A생명이 타깃으로 거론된다.
카드업계는 구조조정이 일단 마무리됐다. 현대카드가 GE소비자금융과의 제휴를, 신한카드는 조흥은행 카드사업 부문과의 통합을 추진 중이다. LG카드도 M&A의 한 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저축은행은 당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지만 연체율 상승 등에 시달리고 있어 언제든 시장에 매물로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