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강한 기업만이 살아 남는다.」
세계 항공우주 산업계는 끊임없는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불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항공기가 대형화하고 고도의 정밀 전자기술이 요구되면서 개발 및 생산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과 기술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국제공동개발이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이미 50년대 말부터 유럽에서 시작했다. 유럽국가들은 자국내 항공기 제작업체를 1~2개, 많아야 4개정도로 줄였다.
70년에 설립된 에어버스(Airbus Industrie)는 그 대표적인 예. 프랑스·영국·독일·스페인 등 4개국의 합작기업인 이 회사는 기업규모를 늘려 위험을 분산시키려는 각 국의 이해가 맞아 국가간 협력관계로 발전했다.
이로써 에어버스는 미국의 대형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로 성장했고 올해 민항기 시장에서 미국 보잉사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미국도 이같은 영향권에서 예외가 아니다. 70년대 맥도널(McDonnell)사는 더글라스(Douglas)사를 흡수함으로써 매머드급 체격을 만들었다. 90년대 초에는 방위산업에 대한 정부 예산이 줄어들자 레스 애스핀(Les Aspin),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 등 국방장관들까지 나서 인수합병을 유도했다.
이렇게 해서 37개로 나뉘어져 있던 항공 제작업체는 록히드마틴, 보잉, 레이시온, 노드롭 그루먼같은 대형회사로 탈바꿈했다.
최근 군수분야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록히드 마틴과 노드롭 그루먼사가 합병을 추진하기도 했다. 비록 이 협상은 수직적인 합병에 따른 기술경쟁력 약화와 원가절감 효과감소 등을 이유로 미국 정부에 의해 거부당했지만 크면 클수록 강해진다는 논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미국 역시 회사끼리의 결합으로도 모자라는 부분은 여러나라가 공동작업을 하는 방향을 모색했다. 미국은 영국·독일·이탈리아·일본을 끌여들여 「인터내셔널 에어로 엔진(IAE·International Aero Engines)」을 설립, 150석 규모의 항공기에 적합한 터보팬 엔진을 공동개발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일본 등과는 B767·777 기종에서 협력하고 있다.
사업 파트너를 찾기 위해 국경을 뛰어넘는 이유는 리스크 쉐어링(위험분산·Risk Sharing) 때문이다. 대규모 투자비용을 분담하고 개발후 제품을 팔 수 있는 공동시장을 넓혀 안정적인 물량공급 기반을 확보하는 잇점이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이 방식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96년말 미국을 비롯해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 등 이른바 항공우주 「빅7」의 매출 규모는 약 1,820억달러로 95년보다 12.1%가 증가했다. 이 가운데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1.9%로 단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설비투자와 종업원수는 각 국가의 국방예산 감축과 90년대 이후 민항기 시장의 성장이 감소하면서 89년을 정점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역설적으로 이런 현실은 기업간 인수합병에 가속도를 붙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아시아도 이 흐름을 따라 중형항공기 사업을 진행해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인도네시아·일본·인도 등이 협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에 불어닥친 경제위기가 심각한 상황인데다 주요 제휴선인 에어버스·보잉 등이 사업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90년대 들어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던 이들 국가들의 항공우주산업은 안팎의 난관에 막에 심각한 기로에 서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아시아 국가들이 살아갈 길은 전문분야에 특화해 세계 틈새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거나 10여년간 축적된 부분품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선진기업들과의 합작사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박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