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푸르른 자연과 동화 숲 속의 그린 시티

호주 캔버라<br>인공 호수 '그리핀' 품은 계획 도시 자연미·인공미 조화 '거대한 공원'<br>한국전 참전 등 과거 역사 담은 비잔틴 양식 전쟁기념관 인상적<br>블랙마운틴 오르면 시가지 한눈에

치밀한 도시계획에 의해 태어난 캔버라 시가지는 동서로 흐르는 강과 규칙적으로 배열된 나무 등 자연과 인공이 짜맞춘 듯 조화를 이뤄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원처럼 보인다. /사진제공=호주관광청

캔버라 전쟁기념관

도시 계획관 내 바에서 연주하는 재즈 연주자들

캔버라 시를 설계한 건축가의 이름을 딴 벌리 그리핀 호수는 최고 높이가 140m에 달하는 제트 분수로 유명하다. /사진제공=호주관광청

역사 유적지를 보면서 인류 문명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여행도 좋지만 바쁜 현대인에게는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온전히 휴식에 빠져드는 여행도 때론 필요하다. 희귀 동식물 등 독특한 생태계와 기후, 깨끗한 자연미, 북반구와는 뭔가 다른 이색적인 분위기 등을 자랑하는 호주는 요즘 같은 계절에 편안하게 휴식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호주의 여러 도시 가운데서도 수도인 캔버라(Canberra)는 100년 전만 해도 불모지나 다름 없던 땅을 치밀한 도시계획으로 새롭게 탈바꿈시킨 도시다. 본래 지니고 있던 자연미와 도시계획에 따른 인공미를 적절하게 조화시킨 것도 이 도시의 특징이다. 사실 캔버라는 지역갈등의 산물이다. 시드니와 멜버른이 서로 호주 연방 수도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다 타협한 것이 캔버라다. 위치도 두 도시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실제로는 시드니에 더 가깝다). 전형적인 계획도시답게 캔버라는 동서로 흐르는 몰롱글로 강을 막아 조성한 인공호수를 중심으로 환상(環狀)ㆍ방사상ㆍ바둑판 모양의 가로가 질서정연하게 배열돼 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원이다. 정도(定都)한지 100년이 채 되지 않아 역사적 유물은 없지만 현대 도시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캔버라는 호주 여행의 '숨은 진주'라 할 만하다. ◇'캔버라의 심장'벌리 그리핀 호수=캔버라도 강과 호수를 끼고 있다. 캔버라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벌리 그리핀 호수(Lake Burley Griffin)'는 지난 1964년 도심을 동서로 흐르던 몰롱글로 강에 댐을 막아 만든 호수다. 캔버라를 설계한 미국 출신 건축가 월터 벌리 그리핀의 이름을 땄다. 수평선이 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인공호수로는 꽤 큰 규모다. 호숫가 북쪽에는 커먼웰스 공원이 길게 조성돼 있고 남쪽 호숫가를 따라 국립현대미술관ㆍ중앙도서관ㆍ호주국립과학센터가 들어서 있다. 호수에서는 조정과 요트ㆍ제트스키를 즐길 수 있고 유람선도 다닌다. 벌리 그리핀 호수는 제트 분수로 유명하다. 커먼웰스 다리 동쪽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캡틴 쿡 메모리얼 워터 제트 분수'는 오전 10시부터 12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하루 두 차례 물줄기를 뿜어내는데, 최고 높이가 140여m에 달할 정도로 장관을 연출한다. 이 분수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점이 캔버라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도시 계획관(National Capital Exhibition) 내에 있는 '레가타 포인트(Regatta point)'다. 레가타 포인트에는 맥주나 칵테일 등을 마시면서 재즈 라이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바(Bar)가 바로 붙어 있다. 이곳을 찾은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인데도 휴일 한낮이어서 그런지 바는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젊은이들이 북적거렸다. 눈과 귀는 즐거웠지만 병맥주 한 병값으로 17호주달러나 받는 상혼에는 입맛이 씁쓸했다. ◇과거 역사 담은 전쟁기념관, 미래 정치 여는 국회의사당=여행객의 발길을 잡아 끄는 역사적 유물은 없지만 캔버라에 들르면 꼭 둘러봐야 하는 장소가 있다. 바로 전쟁기념관과 국회의사당이다. 비잔틴 양식의 원형 돔과 대리석 구조의 장엄한 외관이 인상적인 전쟁기념관은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호주군이 참전한 모든 전쟁의 역사를 기념해 놓은 곳으로, 기념관 중앙 통로의 벽면에는 '코리아'도 새겨져 있다. 호주는 한국전에 연인원 1만7,000여명을 파병했다. 600만개가 넘는 조각들로 이뤄진 모자이크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아름다운 기념홀 벽면에 새겨져 있는 10만여명의 전사자 명단 중에는 한국전 때 산화한 339명의 호주 군인들 이름도 들어 있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전쟁기념관 앞에서 벌리 그리핀 호수까지는 약 1㎞의 붉은 벽돌 도로가 뻗어 있는데, 안작 퍼레이드(Anzac parade)다. 갈리폴리 상륙 15주년을 기념해 완성된 이 도로에서는 매년 4월25일 안작데이(전쟁기념일)에 장엄한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안작 퍼레이드에서 호수 건너 남쪽을 바라보면 캐피털힐 언덕 위에 세워진 호주 연방 국회의사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1988년 호주 건국 200주년을 기념해 지어진 연방 국회의사당은 건물 중앙에 높다란 은색 철골 구조물이 세워져 있어 캔버라 어디에서나 식별할 수 있다. 꼭대기에 호주 국기가 나부끼는 이 구조물은 높이가 81m나 되는 세계 최대 국기게양대다. 국기 크기가 테니스 코트만 하다니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영토가 큰 나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의사당은 건물 대부분이 땅 밑에 있고 극히 일부분만이 땅 위로 돌출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의사당 건물 위에는 잔디공원이 조성돼 있어 시민들이 호수를 내려다보며 여가 시간을 보낸다.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지난해 말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가 슬그머니 다시 생긴 서울 여의도의 어느 돔 건물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다. ◇블랙마운틴ㆍ앤즐리산 전망대서 시가지 조망=잘 구획된 캔버라 시가지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려면 아무래도 평지보다는 시 외곽으로 나가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호주국립대 서쪽, 국립식물원 뒤쪽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 800m의 블랙마운틴에는 남산타워와 같은 높이인 195m짜리 '텔스트라 타워'가 서 있다. 80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레스토랑이 있는 것도 남산타워와 흡사하다. 가이드 말로는 캔버라의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하거나 프로포즈할 때 이곳을 이용한다고 한다. 전세계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행태는 이렇듯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기념관 뒤편에 있는 앤즐리산(Mt. Ainslie)도 곧게 뻗은 안작 퍼레이드로부터 원형 형태의 캐피털힐에 올라선 국회의사당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야경이 아주 멋지다는데 올라가 보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캔버라는 인구 40만명 규모의 소도시지만 해마다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시드니나 멜버른ㆍ브리즈번ㆍ골드코스트 등 시끌벅적한 해안 도시에 비해 캔버라가 '심심한' 동네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캔버라처럼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어울리며 도시 자체를 거대한 예술작품처럼 느끼게 만드는 곳도 그리 흔하지 않다. 논란 끝에 행정복합중심도시로 지어지는 세종시의 모델도 캔버라다. 캔버라는 현대 도시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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