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호랑이가 마침내 벼르고 있던 사냥꾼의 총에 맞았다.'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법위원회 서기의 공식 조사 발표에 홍콩 언론들은 두 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장쩌민 전 주석 등 과거 권력과 완전한 분리를 선언한 동시에 최고지도부 누구도 부패척결 앞에서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보냈다는 분석이다. 그만큼 저우 전 서기에 대한 공식 조사는 앞서 부패척결로 사라진 고위관료들과는 무게감 자체가 다르다.
저우 전 서기가 후진타오 시절 공안·사법·정보기관을 틀어쥔 정법위 서기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인데다 중국 내 최대 이권 집단인 석유방과 지역 기반인 쓰촨방의 좌장 역할을 하며 과거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베이징 정가에서는 이미 처벌 수위를 결정하고 저우 전 서기의 조사를 공식 발표했을 것이라며 원로는 물론 최고지도부의 동의를 얻어 진행된 만큼 중국 공산당 내 계파 간 갈등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저우 전 서기의 사법처리 수위에 따라 시진핑 정부의 부패척결 의지가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르며 시 주석의 권력 강화에 순기능을 할지, 역기능을 할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철저히 계산된 저우융캉 조사=저우 전 서기의 퇴임 이후 1년 6개월 동안 저우 전 서기와 연관을 맺은 쓰촨성 출신 관료와 산업 인맥인 석유 업계 고위직, 공안부·군부의 측근 수십 명은 이미 각종 부패 혐의로 처벌된 상태다. 아들과 친척들도 일찌감치 체포됐다. 저우 전 서기를 포함해 신 4인방으로 불렸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링지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도 재판을 받고 수감되거나 낙마했다.
이런 상황에서 베이징 정가에서는 저우 전 서기가 장 전 주석이 이끄는 상하이방의 주요 인물인 만큼 시 주석이 상하이방 측과 모종의 정치적 거래를 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예상대로 원로정치의 산물인 베이다이허회의 시기와 저우 전 서기의 조사 발표가 겹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현재 저우 전 서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중화권 매체들이 부정 축재, 뇌물수수, 살인 교사, 불륜 등을 저질렀다고 전하지만 확인된 것은 없다. 일부에는 저우 전 서기 가족의 재산이 900억위안(약 15조5,000억원) 규모에 이른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의 중화권 매체 보쉰은 올 들어 "저우융캉이 쓰촨성 서기 시절 20세 연하인 CCTV 여기자 자샤오예와 정을 통하고 그와 재혼하기 위해 조강지처를 살해했다는 혐의가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저우 전 서기의 조사 결과 발표와 사법처리는 올가을 예정된 18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 맞춰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중국 지도부는 4중전회를 오는 10월 열기로 결정했다고 CCTV가 29일 보도했다.
◇시진핑 권력 강화 정점으로=저우 전 서기에 대한 처벌은 시진핑 정부에는 부패척결 의지를 다시 한 번 내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시험대가 되기도 한다.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부패척결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에서 부패 호랑이로 불렸던 저우 전 서기의 처벌이 권력 강화의 정점이 될 수도 있지만 흐지부지 끝날 경우에는 역풍도 각오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런 이유로 저우 전 서기의 조사를 시 주석의 권력 강화를 위한 정적제거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홍콩과 미국의 중화권 매체들은 저우 전 서기가 보시라이와 링지화(후진타오 비서실장 출신) 등과 손잡고 시 주석의 집권을 방해한 신 4인방 중 하나인 만큼 반드시 제거돼야 할 정적이라고 지적한다. 보시라이는 지난해 8월 부패 혐의로 이미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링지화도 최근 친형인 링정처가 고향인 산시성에서 체포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중국 권력 역학구도 변화할까=저우 전 서기의 조사로 중국 공산당 내 권력구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중국 공산당은 현재 후진타오 전 주석, 리커창 총리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파와 장쩌민 전 주석의 상하이방, 시진핑 주석의 태자당파로 나눠져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정치국원과 상무위원을 선출하는 당대회에서는 계파 간 안배를 통해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맞추고 있다.
시진핑 정부를 들어서는 일단 태자당과 상하이방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면서 공청단이 몰락했다. 하지만 태자당의 또 다른 주축이었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에 이어 상하이방의 주요 인물인 저우 전 서기가 몰락하며 권력구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부패척결의 칼날이 앞으로 장 전 주석과 쩡칭훙 전 국가부주석, 자칭린 전 정협 주석, 원자바오 전 총리 등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