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대기업의 '더티 플레이'

“중소기업 문제가 자금난과 인력난ㆍ기술력 등 여러 가지에 걸쳐 있지만 그 한복판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른 것 같다“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에 휴대폰 부품을 공급하는 A사 L사장이 해마다 납품단가를 깎자는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손해를 감수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 대한 답답함을 하소연하며 내뱉은 말이다. 정부가 최근 중소지원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L사장에게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즉 환율급락에 따른 중소기업의 피해를 덜어준다는 명분 아래 정부가 최근 내놓는 원자재 구입 자금을 확대, 산학협력 및 벤처창업 활성화 지원책 등은 현장의 실상을 외면하거나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수직계열화로 묶는 과정에서 상호간 협력성은 사라지고 원천-하청간 종속 관계로 지속되는 불합리한 산업구조로 고착되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 294만개 가운데 대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생산 또는 판매하는 기업은 85.6%다. 거래하는 대기업에 대한 중소기업의 의존도(매출액 대비 납품매출 비율) 역시 81.6%에 이른다. 대기업과 도급관계를 맺고 생산 또는 판매하는 형태가 중소기업 대다수를 차지하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속으로 불만이 들끓고 울분이 터져도 원청 대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횡포를 당해도 혹시 다칠까봐 두려워서 참고 넘어가는 건 당연한 관행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불공정한 게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다는 것. 이런 상태서 ‘대ㆍ중기 상생’ 외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실시한 ‘대중소기업 협력에 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수직적 관계를 통한 불공정 거래가 심각하다고 응답한 업체가 87.5%에 달했다. 말이 좋아 협력업체로 불리지 여전히 수평적 협력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도 여지없이 대기업들은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반대 여론에 떠밀려 현실화되지는 않고 있지만 대기업의 위상을 감안하면 언젠가는 소리 소문 없이 이뤄진다는 게 중소업계의 지배적인 분위기다. 정부는 중소지원정책 개발보다는 대기업과의 불공정한 관계부터 없애는 제도적 방안 마련이 더 시급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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