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살인 진드기


살인 진드기의 공포가 다가오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 각각 130명, 8명을 죽게 만든 살인 진드기 바이러스가 국내에서도 발견됐기 때문이다. 터키에서도 지난 2008년 살인 진드기와 비슷한 '케네'가 창궐해 한 해 동안 145명이 죽었다. 기온과 습도가 높아질수록 진드기의 움직임과 번식도 활발해지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진드기를 괴로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다. 가장 오래된 전승은 이솝우화. '수렁에 빠진 여우'편에 흡혈 진드기가 등장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피부 안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작은 이나 진드기가 인간의 살을 갉아먹어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며 '사이리아시스'라는 병명을 붙였다. 이후 2,000년 동안 공포의 대명사였던 이 병의 특징은 폭군이나 권력자가 주로 걸렸다는 점. 로마의 독재자 슐라와 이스라엘의 헤롯왕도 폭정과 도덕적 결함 때문에 이 병에 걸려 고통 속에 죽었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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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리아시스의 공포는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사라졌다. 진드기나 이 같은 벌레가 자연적으로 신체 내에서 발생할 수 없다는 과학적 증명이 이뤄지고 고대의 폭군들도 다른 병으로 죽었다는 문헌학적 규명 덕분이다. 다만 한 가지, 만약 사이리아시스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 매개체는 이가 아니라 진드기였을 것이라는 학설만큼은 널리 인정받았다. 20세기에는 사이리아시스의 정체를 살인 진드기로 단정짓는 연구 논문도 나왔다.

△진드기는 나쁘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흙 속에 살면서 죽은 동식물의 분해를 돕는 유익한 진드기도 많다. 4만여종에 이르는 진드기 중에 살인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진드기는 극히 일부다. 그마저도 인간의 탐욕에 의해 변형됐거나 사라졌던 독성이 되살아났을 가능성이 크다. 터키에서 케네가 도졌던 시기는 진드기의 천적인 닭이 조류인플루엔자로 집단 폐사된 후다.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역저 '총ㆍ균ㆍ쇠'에서 인간의 역사를 바꾼 결정적 요인의 하나로 바이러스를 꼽는다. 난개발로 바이러스 변형이 일어나고 인간이 그로 인해 죽어나가는 게 우리의 숙명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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