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7월 13일] <1747> 맥밀런 보고서


세계 대공황 초입인 1931년 7월 중순. 파운드화가 약세에 빠졌다. 영국이 금본위제도로 복귀한 1925년 이래 4.86달러를 유지해온 파운드화 가치가 며칠 만에 25%나 줄어들었다. 달러와 더불어 양대 기축통화였던 파운드의 초약세는 가뜩이나 불안정한 세계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 당시 파운드화 급락의 원인은 아직까지도 논란거리다. 통상적인 설명은 7월13일자로 발표된 맥밀런 보고서(Macmillan Report) 탓. 잉글랜드은행이 보유한 금과 파운드화의 대외공여 규모를 밝히는 바람에 해외 투자가들을 불안에 빠뜨렸다는 해석이다. 다른 시각도 많다. 잉글랜드은행을 경쟁상대로 여기던 프랑스 중앙은행이 보유한 파운드화를 매각했다는 해석에서 마침 독일의 금융경색으로 위기를 느낀 네덜란드와 벨기에ㆍ스웨덴ㆍ스위스 등의 중앙은행이 금을 확보하기 위해 파운드화를 매각했기 때문이라는 설까지 다양한 풀이가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두 가지. 첫째, 맥밀런 보고서는 의도와 정반대의 효과를 낳았다. 영국이 수출부진과 물가하락 등에 대응하기 위해 설치한 맥밀런위원회에 포진한 케인스 등은 임금인하는 불황 타개책이 아니며 금융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환경에서는 유효수효를 끌어내는 정책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담았다. 훗날 케인스 경제학의 뼈대가 제시된 셈이다. 두 번째는 10일 뒤 비슷한 시각으로 노동과 외환시장을 다룬 메이 보고서가 나오며 비관적인 전망이 퍼진 끝에 금본위제도가 무너졌다는 점. 미국과 프랑스 등 금을 많이 보유했던 메이저 중앙은행들의 개입에도 파운드화는 약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영국 해군 반란 같은 사회 혼란이 겹치며 영국은 9월21일자로 금본위제도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47개국이었던 금본위제도 채택국가는 6년 뒤 하나도 남지 않았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