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24일] 미국 쿠바 해상봉쇄

북한을 비롯해 쿠바ㆍ이란ㆍ시리아 등은 소위 말해 미국에 찍힌 나라들이다. 세계의 보안관을 자처하는 미국은 마음에 안 들면 직접 무력공격을 하거나 아니면 무역제재라는 간접 방법으로 길들이기에 나선다. 미국의 거침없는 안하무인격 행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남의 땅에 건너가 인디언들을 쫓아냈을 때부터 예견됐다. 1962년 10월24일 쿠바 봉쇄가 시작됐다. 존 케네디 대통령의 봉쇄선언 후 이틀이 지난 뒤였다. 19척의 함선은 신속하게 정해진 위치에 도착, 쿠바 동쪽 800㎞에 원을 둘러치고 포위망을 점차 좁혀갔다. 그리고 2만명의 해병을 태운 42척의 함선으로 제2의 포위망을 구축했다. 이유는 미국의 바로 코 밑에서 쿠바가 소련의 미사일 발사대 설치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쿠바에서 발사된 소련 미사일은 6분 이내에 반경 2,500㎞ 안 미국의 모든 도시를 공격할 수 있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쿠바에 배치된 미사일을 철수하는 대신 터키에 있는 미국 중거리탄 주피터의 철수를 요구했다. 미국도 고민 끝에 후르시초프가 미사일을 단념한다면 해상봉쇄를 중단하기로 했다. 1959년 1월 혁명으로 쿠바 정권을 장악한 피델 카스트로는 미국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카스트로는 그해 5월 미국계 기업의 대농원을 몰수한 뒤 이듬해는 미국계 사탕ㆍ석유회사를 접수하는 등 개혁을 단행했다. 이어 1961년 1월에는 독자노선을 선언하며 미국과 국교까지 단절했다. 손을 보긴 봐야겠는데 마땅한 명분을 찾지 못하던 중 미사일기지 설치는 ‘울고 싶던 차에 뺨 때린 격’이었다. 미국은 2000년부터 금수조치를 일부 완화, 미국 시민들의 쿠바 여행과 쿠바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허용하고 있다. 물론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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