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ECB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금융통화정책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행 0.05%로 동결했다. 또한 예금금리와 한계대출금리도 각각 현행 -0.20%, 0.30%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지난달 시사한 자산유동화(ABS) 채권 및 커버드본드 매입 프로그램에 대해서 매입 규모를 밝힐 것으로 전망됐으나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드라기 총재는 "이달부터 커버드본드 매입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ABS는 연말 이전에 사들이기 시작할 것"이라며 "이번 매입 프로그램은 중소기업에 대한 시중 대출 확대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ABS는 부동산·유가증권 등 다양한 자산을 담보로 발행되는 증권을 의미한다. 커버드본드는 ABS와 유사하지만 발행기관 파산시 우선 변제권이 주어져 안정성이 더 높다.
드라기 총재는 ECB의 시중 유동성 공급강화 방침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시중에 1조유로 이상의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기존의 방침을 재확인했다. 또 유로화 금리에 대해서는 "현재 약세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며 약세 지지 발언을 내놓았다.
ECB는 올 들어 지난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부양정책 패키지를 내놓았다. 6월에는 사상 처음 은행 예치금에 대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고 민간 대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연말까지 두 차례에 걸쳐 목표물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 시행방안을 발표했다. 9월에는 정책금리를 0.15%에서 0.05%로 인하하고 한계대출금리와 예금금리도 각각 0.1% 낮춰 0.3%와 -0.2%로 낮추고 ABS 매입 프로그램 도입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 같은 부양책들은 실제로 효과를 거의 나타내지 못하고 오히려 유로존은 금융위기 이후 세 번째 경기침체에 직면해 있다.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6월 이후 매월 떨어져 9월에는 0.3%로 2009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시장조사 업체인 마킷이 발표한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확정치는 50.3으로 지난해 7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경기부진으로 지난달 1차 목표물장기대출프로그램(TLTRO) 입찰에서는 시장 예상치 1,000억~2,000억유로 크게 하회하는 826억유로만 낙찰됐다. ECB가 아무리 싸게 민간은행에 돈을 빌려줘도 워낙 대출수요가 부진해 가계나 기업 등 민간으로 돈이 흘러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12월 2차 입찰을 실시하더라도 당초 목표인 4,000억유로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고 시장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ECB 결정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매입 대상과 규모가 빠졌고 키프로스나 그리스와 같은 재정 취약국의 은행들이 발행한 조건부 ABS 매입 입장을 밝혔다. 필리스 파파다비드 BNP파리바 애널리스트는 "드라기 총재가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 같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