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위기의 불길이 미국ㆍ중국 등 주요국으로 번지면서 전세계적인 동시 불황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선방하던 미국 경제도 유럽 위기의 영향권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중국 역시 2ㆍ4분기 성장률이 7% 초반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 등 경착륙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ㆍ중국ㆍ유럽 등 세계 경제의 3대축이 일제히 경고음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21일 블룸버그TV 회견에서 "미국 경제가 매우 부진해 보인다"며 "전세계적 불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 세계 경제의 둔화 추세는 이미 심상찮은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유럽 위기가 먼저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더니 이번에는 실물 경제로 옮겨 붙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유럽 경기를 떠받쳤던 독일의 6월 제조업지수가 44.7로 3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전문 분석기관인 마르킷은 최근 보고서에서 유로존이 지난 1ㆍ4분기는 독일이 버텨주는 덕택에 마이너스 성장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독일마저 빨간불이 켜지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르킷은 현재 추세대로 간다면 유로존이 2ㆍ4분기에 -0.6%의 성장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도 제조업 경기가 하락하며 최근 4주간의 평균 실업수당 신청 건수가 6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고용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두 자릿수의 고속 성장을 구가하며 원유ㆍ철광석 등 원자재의 블랙홀 역할을 했던 중국의 엔진이 급속히 식고 있는 게 우려 요인이다. 이미 시장은 이 같은 위기감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 실제 2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일보다 4% 급락한 78.20달러로 80달러가 붕괴하며 지난해 10월 이래 최저치를 나타냈다. 물가가 하락하는 가운데 경기가 침체되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시티븐 마소카 웨드버시 모건 이사는 "유럽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줄이고 있으며 중국의 수출이 줄어들면서 글로벌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면서 "경기침체의 기원은 유럽이지만 현재 다른 곳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실물 경기가 급속히 침체되더라도 2008년 위기 때와 달리 주요국이 과감한 경기 부양책을 쓰기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 2008년 당시 무려 4조위안의 재정 부양책을 동원해 경기 반등에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부동산 등 자산 거품이 확대되고 철강ㆍ시멘트 등 그렇지 않아도 공급 과다로 몸살을 앓던 기존 주력 산업의 과잉 투자 문제가 더욱 확대된 상황이다.
미국 FRB도 20일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을 0.5%나 내리면서도 장단기 국채 교환프로그램인 오퍼레이션트위스트를 올해 말까지 연장하는 대책만 내놓은 채 제3차 양적완화(QE3)는 최후의 카드로 남겨뒀다. 그만큼 경기가 더 어려워질 때 FRB가 추가적으로 내놓을 대책이 소진되고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