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이집트 反美정권 땐 '오일루트' 통제 불능…초조한 백악관

[美주도 석유시장 격변 올수도]<br>오바마 대통령등 수뇌부 모여 '시위 해법찾기' 마라톤회의<br>무바라크에 민주화 개혁 압박<br>친미정권 옹립 물밑작업 나서


미국 입장에서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위기는 단순한 아랍권 독재국가의 정권붕괴 위기가 아니라 미국 중동정책의 위기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중동지역 내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으로 30년간 우호관계를 지속해온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될 경우 미국이 깊숙이 관여해온 중동 안보와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틀어쥐어온 석유패권이 뿌리부터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동 석유패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미국은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집트 유혈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29일(현지시간). 오전부터 워싱턴 백악관으로 톰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을 필두로 윌리엄 데일리 백악관 비서실장, 리언 패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집트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안보ㆍ외교 분야 최고위급 긴급회의는 조 바이든 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전화로 참가한 가운데 2시간 동안 지속됐다. 몇 시간 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유혈사태로 치닫는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내각 해산 선언 등 이집트 정국이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데 대한 미국의 초조함은 백악관의 긴박한 행보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30년 전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암살당한 뒤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권을 잡아 30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장기집권을 이어왔다. 대신 무바라크 정권은 중동 이슬람권의 대표적인 친서방정권으로서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입김을 발휘할 수 있도록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왔다. 이 같은 공생관계는 석유시장에서 미국이 패권을 발휘하는 데도 암암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비가맹국인 이집트는 석유 매장량 44억배럴, 일일 생산량 67만배럴 규모로 세계 석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는 크지 않다. 하지만 이집트는 선진국들로 석유를 실어 나르는 길목인 수에즈 운하를 틀어쥐고 있는 나라다. 미 에너지 정보청에 따르면 지난 2008년과 2009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석유 물량은 하루 160만배럴에 달했다. 이집트의 친미ㆍ친서방 정책은 서구 선진국으로의 안정적인 석유 수급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요인이 돼온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집트의 민주화 불씨가 무바라크 축출을 요구하는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로 격화하자 미국은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였다. 민주화에 거스르는 무바라크 대통령을 비호할 수도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뒷받침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온 무바라크 대통령을 버리기도 난감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는 일단 '폭력 반대'와 '정치개혁'을 강조하며 애매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집트 정국은 사실상 정권교체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바라크 정권 대신 이슬람 극단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이다. 실제 마틴 인다이크 전 이스라엘 주재 미 대사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몰락할 경우 무슬림형제단과 같은 이슬람 급진세력이 이집트를 장악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깨고 중동 정세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하원의 일리애나 로스레티넌 외교위원장도 29일 성명을 통해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민주적인 선거 시행을 촉구하는 한편 "무슬림형제단이 현재의 정정불안을 틈타 세력을 확장할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경계감을 드러냈다.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무바라크 대통령을 설득해 민주화를 내세운 정치개혁을 단행하도록 하거나 최소한 친미 성향을 갖는 새로운 정권을 세워 이집트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다. 로스레티넌 위원장은 "미국은 책임 있는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기준을 충족하는 후보들이 참여하는 선거만 지지해야 할 것"이라며 "테러리즘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법치를 준수하며 비확산 의무와 이스라엘 평화협정을 인정하는 것이 후보자의 자격요건"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신경립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