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수출로 거둬들이는 외화가 한 해에 2억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장 많이 팔리는 수출품은 뭘까. 제주도 명물인 감귤이나 갈치, 흑돼지가 아닌 반도체와 넙치다.
2011년 제주도 제1의 수출품은 반도체였다. 2012년에는 넙치에 1위를 넘겨줬지만 반도체의 수출비중은 2011년 30%, 2012년 12%로 적지 않다. 특히 반도체 기업 한 곳이 거둔 실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얼핏 보면 청정 섬 제주도와 반도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반도체산업 중 제조공장이 없는 팹리스 반도체기업은 무공해 산업이라는 점에서 같다.
반도체기업은 기능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눈다. 하나는 제조시설을 갖추고 반도체를 직접 만드는 종합반도체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반도체의 설계 등 개발만 하고 제조는 외주로 해결하는 팹리스 반도체기업이다.
이중 팹리 기업은 설계와 개발, 제품검증만 전문으로 한다. 제품생산은 파운드리 업체에 맡기기 때문에 오염물질 생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표적 팹리스 회사는 휴대폰에 들어가는 CDMA칩을 개발해 막대한 로열티 수입을 챙기고 있는 퀄컴이다.
관광산업 만으로는 일자리 창출 한계
팹리스 회사는 첨단기술과 고급인력이 접목된 기술집약형 기업이다. 여기서 개발하는 반도체칩은 어린애 손톱보다 작아 물류비용이 부담인 섬에서도 걱정 없다. 오히려 개발을 전담하는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대도시보다 쾌적한 제주의 환경이 더 좋다.
제주는 누구나 알듯이 천혜의 자연환경이 만들어준 명실상부한 관광도시다.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2007년 세계자연유산, 2010년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유네스코 3관왕을 달성했다. 2020년 제주가 세계 최초로 국제자연보호연합(IUCN)이 인증하는 환경수도가 된다면 제주의 브랜드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제주가 관광산업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제주의 연간 관광객은 2005년 500만명을 밑돌다가 지금은 1,000만명에 육박한다. 관광객은 늘었지만 그만큼 도민의 삶이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관광과 농업에 치중된 경제가 안정적 일자리를 많이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필요한 이유다. 첨단제조산업을 육성하면 좋지만, 오랜 시간과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땅을 파고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을 세울 수도 없는 일이다.
딜레마에 빠진 제주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 중 하나가 무공해 팹리스산업이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 주력산업이다. 그 중 팹리스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대부분 중소 벤처기업들이다.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뭉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판교와 충북 지역에 팹리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된다는 것은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팹리스 등 무공해 기업유치 적극 나서야
관광과 농업에 목매고 있는 제주 역시 팹리스 반도체 클러스터를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관광도시'와 '첨단제조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클러스터를 조성하면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우선 제주도의 인재양성과 고용창출에 큰 도움이 된다. 팹리스 회사들은 공동연구와 개발, 파운드리의 공동이용 등을 통해 원가경쟁력이 높아진다. 수도권에 몰려 있는 대기업 엔지니어들에게는 제주도가 은퇴 후 후진양성 등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
제주에 팹리스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큰 것은 제주도가 적극 나서서 기업을 유치하고 재정도 뒷받침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미 모험적인 팹리스 업체가 제주에 둥지를 틀었고 제주대학교에는 산학협력단이 꾸려져 운용 중이라는 점이다. 또 제주에 본사를 둔 기업들이 산업체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클러스터 조성에 가장 큰 걸림돌인 우수인력 조달 문제를 풀고 있다는 점이다.
클러스터 조성에 필요한 기본 인프라는 어느 정도 갖춰진 만큼 관계부처와 제주도의 의지만 있다면 첫 삽을 뜨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일단 시작하고 꾸준히 밀고 나간다면 제주도가 관광산업과 첨단지식산업의 메카가 되는 날이 머지않아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