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24일] <1482> 1857년 공황


1857년 미국 뉴욕, 예금인출 소동이 일고 투자자들은 폭락하는 주가에 비명을 질렀다. 사태의 도화선은 8월24일 오하이오생명보험 신탁회사 뉴욕지점의 파산. 직원의 횡령으로 미국 굴지의 금융회사가 휘청거린 소식은 미국뿐 아니라 태평양을 건너 유럽에도 퍼졌다. 인류가 경험한 최초의 국제적 공황인 1857년 공황이 시작된 것이다. 마침 영국 금리가 상승하던 시기여서 뉴욕시장의 혼란은 해외투자가들의 자금이동을 불렀다. 미국 연방국채의 절반, 핵심 블루칩인 철도 주식의 26%를 보유한 영국 자본이 떠날 즈음 닥친 해상재난도 불황을 키웠다.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14톤의 금괴와 금화를 싣고 뉴욕을 향해 출항한 ‘센트럴’ 아메리카호가 9월 중순 카리브해에서 폭풍으로 침몰해 금융대란에 대응할 자금도 사라졌다. 결국 연말까지 뉴욕증시의 주가가 3분의1토막 나고 기업 6,000여곳이 문을 닫았다. 사정은 유럽도 마찬가지. 크림전쟁 종결로 러시아가 곡물 수출을 재개함에 따라 식료품 가격이 급락하고 철도부지 주변의 부동산 가격 하락, 소비둔화, 생산격감의 악순환에 빠졌다. 전세계적인 공황에 ‘세계는 하나다. 산업과 무역, 증기선과 전신이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는 말도 나왔다. 미국 정부는 영국 자본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수입관세를 내리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공황은 남북전쟁이 시작된 1861년에서야 완전히 끝났다. 유럽 각국은 사상 최초의 중앙은행 간 대부와 금융위기시 공동대응 방안을 마련하고서야 공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자본주의 최초의 국제 공황으로부터 152년. 오늘날은 과거보다 더 위험하다. 한 나라의 위기는 다른 나라에 실시간으로 전이되고 파괴력도 커졌다. 작금의 글로벌 경제위기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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