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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좌절된 김수근의 꿈, 르네상스호텔

'강남 개발' 욕망에 '도시의 맥' 끊기다



상록회관 6층에서 바라본 르네상스호텔과 삼부오피스빌딩.

상록회관과 이들 두 건물은 고 김수근씨와 제자들의 작품이다.


김수근의 건축혼 담긴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88올림픽 열린 해 개관… 테헤란로 상징 건물로


버선코의 곡선 응용… 모서리 둥글게 설계해 편안하고 따스한 느낌

제자들이 닮은꼴 설계… 서울상록회관 등과 함께 '도시 전체의 질서' 추구

주변 고층건물 들어서 이제는 퇴물로 취급… 개발·보존의 기로에


서울 강남 테헤란로와 언주로가 만나는 교차로에는 닮은꼴의 건축물 세 개가 자리 잡고 있어 눈길을 끈다. 테헤란로 237에 위치한 '르네상스호텔'과 바로 뒤편에 있는 '삼부오피스빌딩', 그리고 언주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자리 잡은 '서울상록회관'이다. 언뜻 보기에도 닮은꼴인 이 세 건축물은 건물 모서리가 곡선 형태를 띠고 있다. '버선코의 곡선'을 연상케 한다. 테헤란로 한복판에 외롭게 서 있는 이 건물들은 묘하게 '편안하고 따스한' 느낌을 준다. 이들이 같은 공간에 비슷한 모양으로 서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도시의 맥락을 잇고자 했던 김수근과 그의 제자들

르네상스호텔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고 김수근씨의 유작이다. 지난 1988년 완공된 이 호텔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85년 병상에서 스케치한 마지막 작품 중 하나다. 비슷한 시기에 설계한 서울역 인근의 '벽산빌딩(현 게이트웨이타워)'도 르네상스호텔처럼 모서리가 곡선인 것이 특징이다. 이는 그 시기 김수근씨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작은 단서가 된다.

그의 제자인 승효상 이로재 대표는 "르네상스호텔은 단순히 하나의 건축물로 볼 것이 아니라 이 건축물이 가진 전체적인 '질서'를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질서는 맥락이다. 좁은 의미에서는 르네상스호텔이라는 건축물 자체의 맥락이고 넓은 의미에서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맥락이다.

그는 "(설계 측면에서 볼 때) 르네상스호텔의 가장 큰 특징은 코어(core)를 중심으로 두 개의 '켜'로 보이게 설계한 점이며 저층부까지 합치면 세 개의 켜로 이뤄져 있다"며 "또 이는 주변의 다른 건물로 이어지며 또 하나의 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수근씨의 제자들은 스승의 생각을 이어가고자 했다.

르네상스호텔 바로 뒤편에는 김수근씨에 이어 '공간(空間)'을 이끈 2대 대표이자 그의 제자인 고 장세양씨가 설계한 '삼부오피스빌딩(1992년 준공)'이 자리 잡고 있다. 또 언주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맞은편에는 승 대표가 설계한 '서울상록회관(1991년 준공)'이 있다. 건축양식은 르네상스호텔과 같다.


르네상스호텔만 보면 제자리를 찾지 못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삼부오피스빌딩·서울상록회관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1980년대 후반 김수근씨와 그의 제자들이 꿈꿨던 도시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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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태어난 가장 화려했던 르네상스호텔

르네상스호텔이 있는 테헤란로는 길이 4km, 너비 50m의 왕복 10차선 간선도로. 이곳은 과거 중동 진출과 강남 개발, 벤처붐을 상징하는 곳이다. 현재도 대기업 본사와 주요 기업들의 오피스빌딩이 몰려 있는 지역이다. .

테헤란로는 건물 하나, 골목길 하나도 모두 치밀한 계산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테헤란로에 대해 건축가 고 정기용씨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마치 성장률을 나타내는 막대그래프처럼 들어서 있는 '독점자본의 외딴섬'과 같은 곳"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르네상스호텔이 들어선 19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테헤란로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 올림픽 개최를 불과 3개월여 앞두고 문을 연 지하 2층, 지상 24층 규모의 르네상스호텔은 당시 테헤란로 일대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이었다. 김수근씨 입장에서도 르네상스호텔은 그때까지 설계한 건축물 중 가장 높은 층수의 건물이었다.

이와 관련해 건축사무소 공간이 발간하는 월간지 '공간'의 1986년 9월호에 실린 좌담회를 보면 승 대표의 흥미로운 설명이 나온다. 당시 그는 "한국 건축사에서 김수근 선생님만큼 사회 또는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분은 없었다"며 "특히 1980년대는 올림픽이라는 주제가 국가의 단기적 목표로 등장하면서 그와 연관된 건축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여러 분야에 여러 가지 형태로 영향을 미친 시기"라고 말했다.

르네상스호텔의 소유주인 삼부토건은 1981년 '88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되던 바로 그해에 부지 약 1만 6,500㎡를 매입했고 올림픽 개최에 맞춰 르네상스호텔을 개관해 큰 수익을 거뒀다.

2015년 현재,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선 르네상스호텔

화려했던 과거를 자랑하는 르네상스호텔이지만 지금은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김수근씨의 뜻과 달리 르네상스호텔은 테헤란로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남지 못했다. 테헤란로 일대에 특징 없는 빌딩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그가 고민했던 도시의 맥락이 끊겨버렸기 때문이다.

승 대표는 "서울상록회관 준공 당시에는 바로 앞 테헤란로 대로변에 빌딩이 없었다"며 "이후 들어선 빌딩이 르네상스호텔·삼부오피스빌딩·서울상록회관과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지어지면서 맥락이 끊겨버렸다"고 설명했다.

테헤란로에는 그후 고층건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현재 르네상스호텔은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퇴물 취급을 받고 있다. 심지어 르네상스호텔은 모기업인 삼부토건의 경영난으로 시장에 매물로 나온 상태다.

디벨로퍼 문주현 회장이 이끄는 엠디엠(MDM)과의 우선협상은 끝났지만 여전히 매각가 9,000억원선에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이 마무리되면 르네상스호텔은 다른 모습으로 재건축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올해 3월 르네상스호텔 개발계획이 서울시 심의를 통과했다.

김수근씨의 르네상스호텔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에 대해 승 대표는 "사적 소유의 건물이기 때문에 이미 인허가가 난 건물을 보존하라고 고집을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서도 "르네상스호텔은 강남 도시개발을 상징하는 건물인데 건축에 대한 몰이해로 부수려 하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사진=송은석기자


고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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