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리뷰]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시·삶과 우리현실의 대화

관객 일깨우는 액자 구성 돋보여

근현대사 체험 '자유시인' 스토리… 현재에 전하는 메시지 깊은 울림

반복되는 풍자는 다소 진부함도


빠져들 만하면 이내 선을 긋는다. 작정한 듯 몰입을 방해하는 독특한 작품을 보는 동안 신기하게도 관객은 연출이 곱씹었던 화두와 마주한다. "내 안의 김수영을 찾고 싶다."

지난 4일 개막한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사진)'는 자유시인 김수영의 시와 삶이 던지는 메시지를 짚어간다. 긴 연극 제목도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첫 구절이다. 사회 부조리에는 눈감으면서 소시민인 설렁탕집 여주인에게는 버럭 화를 내는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냈던 저항시인. 김수영은 시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탐구했다. 시를 쓰는 '온전한 나'로 살고 싶었던 그는 요동치는 근현대사 속에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았다. 미국과 소련, 남과 북, 좌와 우.


작품은 설정부터 관객을 당황케 한다. 배우 강신일이 배우 강신일을, 배우 정원조가 연극의 실제 연출·작가인 김재엽과 배우 정원조를 연기한다. 두 남자가 출연을 고민하며 김수영의 시를 읽고, 더 나아가 그의 과거를 재연하면서 연극 안의 또 다른 연극이 시작된다. 둘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4.19와 5.16 속으로 들어가 그 시절 김수영(오대석)을 만난다. 이야기를 따라 '시여 침을 뱉어라', '풀', '푸른 하늘을' 등 김수영의 시가 영상과 음성으로 흐르며 감성을 돋운다. 강신일과 정원조는 수시로 관객을 깨운다. 과거로 가 김수영과 이야기를 나누던 강신일이 인민군 배역을 맡은 배우를 향해 "너 연기 진짜 열심히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끌려가는 건 아닌 것 같아"라고 하거나 재엽을 연기 중인 정원조를 향해 "너 대본 이런 식으로 쓸래?"라고 외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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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에 국민을 버리고 도망간 대통령, 시인마저 남북으로 갈라진 비극,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시대를 경험한 김수영과 간첩 조작 사건, 카카오톡 검열, 역사 교과서 논란을 목격한 배우 강신일은 만나고 대화한다.

그 이야기 밖에선 인혁당 사건을 그린 연극 '4월 9일'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되는 의사의 고난이 담긴 '한씨 연대기', 분단과 군부정권의 희생양을 그린 영화 '실미도'에 실제 출연했던 강신일이 작품을 회고하며 그 속의 수많은 김수영을 끄집어낸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물고 들어가는 액자식 전개와 배우들의 방해는 결국 '극 속 시인의 고뇌는 지금을 사는 우리의 이야기'라는 강한 외침이다.

연극 자체가 연극을 만들어 가는 과정인 연출이 흥미롭다. 유쾌했던 연출과 풍자는 그러나 반복을 거듭하며 2막의 일부 장면에선 진부함을 안기곤 한다. 연극과 현실을 오가는 동안 관객은 과연 자기 안의 김수영을 만났을까. 30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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