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과장님' 사라진지 언젠데… 인사 트렌드 못따라가는 정부

전문인력 채용 지원제 '과장급 5년 이상' 제한

직급 없앤 곳에선 못가… 수요자 중심 대책 필요


#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A대표는 고용노동부의 고용창출 지원사업 중 하나인 '전문인력 채용 지원제도'를 이용하려다 황당한 일을 당했다. 지원 대상 인력이 '과장급 5년 이상'이어야 한다는 자격요건 때문에 신청조차 못한 것. A대표가 스카우트해온 경력 직원이 다닌 전 직장은 수평조직이어서 과장 직급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문인력 채용을 돕겠다던 지원제도가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해 유명무실한 상태가 됐다"며 "여러 번 개선을 요구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혀를 찼다.

11일 벤처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고용률을 높이고자 실시 중인 지원사업이 낡은 인사기준을 고집,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업무 효율화를 위해 대기업은 물론 정보기술(IT) 업계까지 직급을 없애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과장급 5년 이상'이라는 경직된 기준을 고수해 정작 도움이 필요한 벤처기업들에 '그림의 떡'이 되고 있어서다. 세상은 4차원으로 바뀌었음에도 관료들은 여전히 수십년 전 1차원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전문인력 채용 지원제도는 기업주가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문인력을 고용한 경우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지원금은 최초 6개월 이상 근로자를 고용한 경우 1차로 432만원을, 이후 추가로 6개월 이상 고용한 경우에 한해 2차로 648만원을 지급한다.

하지만 지원 대상이 '과장 이상의 직급으로 5년 이상 종사한 사람'으로 한정돼 있어 A대표처럼 지원 문턱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창업 4년 차를 맞은 B대표 역시 "고급인력 수급이 절실한 상황에서 정부 제도를 믿고 어렵게 대기업에 다니던 분을 설득했는데 과장급이 없는 회사에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제도를 이용할 수 없었다"며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규정 때문에 정말 필요한 회사들이 이를 이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고용부 관련 규정에는 '과장 이상의 직급이란 그 직급보다 낮은 직급이 둘 이상 있는 직급을 의미한다'는 추가 설명이 달려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IT 전문기업의 경우 과장은 물론 부장 직급을 없애며 수직화된 직급체계를 바꾸고 있어 제도 개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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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KT의 경우 지난 2012년 2월부터 '매니저'로 직급과 호칭을 단일화했다. KT의 한 관계자는 "사원·대리·차장·부장 등의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해서 사용하고 있다"며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 직원들 간 업무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통합 매니저제를 시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SK텔레콤는 KT보다 6년 먼저인 2006년 인사제도를 혁신해 매니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후 SK플래닛·SK커뮤니케이션 또한 직급 구분을 줄여 직급 차이에서 발생하는 장벽을 없앴다. 이 회사들은 임원·본부장 등은 역할을 고려해 호칭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다른 직급은 매니저로 통일해 빠른 의사결정으로 업무효율을 높이고 있다.

IT 업계의 변화는 더욱 빠르다. 다음커뮤니케이션즈는 최고경영자(CEO)부터 일반 사원까지 직급 없이 '님'으로 부른다. 카카오는 아예 직급 대신 영어 이름을 부르는 방식으로 소통을 강화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브라이언(Brian), 이석우 공동대표는 비노(Vino), 이제범 공동대표는 제이비(JB)로 불린다. 이 밖에 롯데·포스코·한화 등이 매니저로 명칭을 통일하거나 직급을 단순화한 상태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오히려 지원제도 이용률이 낮다며 관련 예산을 올해 대폭 삭감했다. 지난해 74억원이던 전문인력 채용 지원 예산은 38억원으로 줄어든 것.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고용창출 지원을 위해 마련된 제도 중 하나지만 전문인력 채용이 많지 않아 올해는 예산을 줄이기로 했다"며 "'과장급 5년 이상'이라는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전히 지원제도 곳곳에 공급자 중심 마인드가 강하게 남아 있다"며 "생색내기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은 "정부가 앞으로 지원사업을 정할 때 기계적인 직급을 적용하지 않고 유연한 판단을 내려주는 것이 맞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수요자 맞춤형 지원책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정책으로 남아 있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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