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마음 코칭] 삶의 영원한 보루, 고향

연어는 바다 거슬러 강으로 귀향… 여우도 죽을 땐 태어난 곳 향해

혈연, 전생의 몇 겁으로 만난 인연… 한가위 고향서 따뜻한 정 나누길



정운스님

중국 당나라 때, 유명한 스님인 마조(馬祖·709∼788) 스님은 사천성 출신이다. 이 스님으로 인해 참선하는 지표가 형성됐을 정도로 중국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등 북방 불교에 끼친 영향이 매우 지대하다. 마조 스님은 19세에 출가한 뒤 고향인 사천성을 떠났다. 스님은 20대에 호남성, 복건성 등지에서 수행했고, 30대 중반에 깨달음을 얻은 뒤 큰 스승이 되어 수많은 제자들을 지도했다.


어느 날 마조 스님은 제자 여러 명을 데리고 고향인 사천성 시방현을 방문했다. 말 그대로 스님께서 태어나고 출가 전까지 자랐던 마을을 찾아간 것이다. 마조 스님 일행이 고향 마을 어귀에 막 들어서려던 참이었다. 마침 마을 입구에서 스님들이 걸어오는 모습을 본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마조 스님을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다.

“어 마씨네 키쟁이 코흘리개가 지나가네.”

마조 스님이 이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출가해 나이 들어서 절대 고향에 가지 말라.”


그 할머니에게는 마조 스님의 어릴 적 모습이 먼저 떠올랐던 것으로 나무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른 입장에서 제자들 앞에서 당한 일은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예수님도 성인이 된 후, 고향에 갔다가 고향 사람들에게 당한 곤욕이 있어 제자들에게 ‘절대 고향에 가지 말라’고 하였다는 내용을 책에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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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 스님이나 예수님처럼 성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도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이야기다. 필자도 형제가 여럿이지만, 출가이래로 만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고 몇 년에 한 번 보는 정도다. 승려 신분에 익숙해 있다 보니, 어릴 때 이름조차 어색하고, 형제들끼리 서로 존칭 쓰는 것도 불편하다. 무엇보다도 서로 대화할 공통 주제거리가 없으니 당연히 만나는 일이 드물다. 이외 친척들을 만나도 어릴 때 본 내 모습을 떠올리는지라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다. 거의 인연 없이 살았는데, 근자에 부친의 타계로 며칠을 함께 보냈다. 이렇게 피붙이 인연이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삶과 인연에서 피를 나눈 부모형제, 고향 사람들, 가까운 지인들이 어찌 칼로 무 자르듯 잘라지겠는가!? 불교에서는 부부, 부모와 자식, 친척 등이 과거 전생의 몇 겁으로 만난 소중한 인연이라고 한다.

25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도 성불하고, 그 다음 해 고향 카필라성을 방문했다. 부처님도 고향 사람들을 진리로 제도하고, 사촌 동생과 아들을 교화해 출가토록 하였다. 아마도 깨달음이나 행복한 방법을 가장 가까운 고향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성자의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것과 비슷하게 경제에도 회귀본능이 있다. 중국의 복건성이나 광동성 출신 사람들은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 반드시 고향에 투자해 경제적으로 도움 주고 있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났던 강에서 수개월을 보낸 뒤에 바다로 떠난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연어는 1∼5년가량 바다에서 생활한 뒤 태어났던 작은 강으로 다시 헤엄쳐 돌아간다. 또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우도 죽을 때는 자기가 태어났던 곳을 향하여 머리를 두고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동물이나 어류조차도 삶의 마지막을 고향에서 맞이하는 것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고향이 영원한 삶의 안식처인가보다. 고향과 수만리 떨어진 타향에 있어도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 곳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으니, 고향은 영원한 보루다.

한가위, 명절에 고향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정을 나눔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요,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설령 고향 사람들이 옛날의 코흘리개적 과거를 기억하고, 그대 이름 부를지언정 이 또한 사람 사는 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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