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경제가 잘 되면 정치에 독?


요즘 연말이라 송년회가 한창이다. 며칠 전 어느 상가 번영회 모임에 참석했다. 경기가 어떠냐고 물어보니 다들 너무 힘들다고 한다. 집에 돈을 가져다준 지 오래됐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종업원 월급이 몇 달째 밀렸다는 사람도 있었다. 지방도 심각하다. 수도권 어느 도시에서 음식점을 하던 지인은 적자가 쌓여 문을 닫았다. 그 동네에는 매출이 절반으로 줄어든 음식점이 많다고 했다. 또 영남 어느 군청 앞 음식점 주인도 외환위기 때보다 힘들다고 했다. "여기서 20년째 식당을 하고 있어요. 그동안 종업원 두 명을 썼는데 올해 처음으로 다 내보내고 우리 식구끼리 꾸려나가고 있어요." 혹자는 한국의 경제 사정이 일본보다 낫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상위계층의 소비도 줄어들어 문 닫는 백화점이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서민경제는 내려가지만 상위계층의 소비는 아직도 늘고 있어 백화점들이 성업 중이다. 사회적으로는 한국이 일본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상위계층과 중하위계층이 모두 가라앉는 일본보다 계층 간 간극이 벌어지는 한국에서 양극화 문제는 더 심각하다. 한국에서 사회적 불만과 갈등이 커지는 원인이 된다. 영국에서는 내년부터 대학 등록금이 세 배 인상된다. 연간 3,000파운드에서 9,000파운드로 무려 천만원 이상 오른다. 그런 정책이 가능한 것은 영국 경제가 어려워 국민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무역 1조달러 시대에 진입했다는 뉴스는 역사적인 쾌거다. 하지만 서민의 피부에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수출이 잘되고 대기업이 괜찮다는 소식에 오히려 위화감만 커지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 우리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인 것은 나라 전체가 어려워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정부가 경제는 괜찮다고 하면서 국민에게 고통을 분담하자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 지출을 줄이고 있는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계층마다 복지를 늘려달라는 목소리만 요란하다. 나라 곳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하고 다들 자기 몫을 퍼가기에 바쁘다. 경제지표 호조는 정치적으로 약이 아니라 독인가. 대기업이나 부자가 고통을 과감하게 분담하는 모습이 없으면 서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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