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이 저물고 있다. 이맘때쯤 발표되는 올해의 10대 사건과 같은 뉴스를 보면 언제 저런 일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숨가쁘게 지나간 2004년은 필자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한해였다. 특히 올해에는 정동극장장으로 임명되면서 평생 몸담았던 발레의 세계를 벗어나 좀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으로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이다. 정동극장이라는 새로운 여행지에서 필자는 실로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인을 만났다. 재기발랄한 젊은 록 밴드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노장까지, 좋아하는 작품을 위해 기꺼이 노 개런티로 출연하는 연극배우들, 아이들을 위해 평생 인형극만 파고든 초로의 인형극 장인 등….
그들은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대체적으로 행복의 지수가 남들보다 높아 보였다. 그 이유가 뭘까. 예술가들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매사를 계산하며 가식으로 자신을 가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희로애락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무대에서 위선과 거짓은 금방 들통난다. 통하는 것은 오직 그 예술가의 인간적인 진실뿐이다. 그렇기에 무대에 선 예술가는 세상에 자신이라는 ‘사람’을 다양한 예술 형태를 통해 프레젠테이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모습이 진실할 때 관객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관객은 무대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길 원한다. ‘아름다운 사람’이란 무대예술의 본령과 맞닿아 있다. 관객이 무대에서 원하는 아름다움은 바로 가식 없이 솔직한 인간의 모습이다. 관객들은 바로 그렇게 울고 웃을 줄 아는 자연스러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극장으로 온다. 관객은 인간적인 것이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한 것처럼 ‘세상이란 커다란 무대’나 다름없다. 배우만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세상이라는 무대의 배우인 것이다. 한해가 가고 새해를 맞는 요즘, 세상이라는 무대를 밝히는 ‘아름다운 사람’의 조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자연스러운 사람이 아름답다는 누군가의 글이 문득 마음 깊이 파고든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완벽한 사람이 필요치 않다/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사람이 필요하다/우리에게는 때로 슬픔에 젖고 화도 내며,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마치 기후처럼 변하는 비가 올 때도 있고, 구름이 낄 때도 있고, 햇빛이 쨍쨍할 때도 있는 것/우리에게는 모든 계절이 필요하다/진실한 사람은 모든 기후를 갖는다/추위, 더위, 봄, 가을, 모든 것을 갖는다/그런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