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부도는 잘못된 경영의 책임이다. 전문경영이라던 기아도 예외가 아니고 오너경영이라던 진로도 예외가 아니다. 기업이 망하는 것만큼 시장의 냉혹한 힘을 보여주는 것도 없다. 우리 대기업의 부도행진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는 경기변동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부채의 금융비용을 막을 만큼 경쟁력에 자신이 없는 기업들은 모두 부도가 예정되어 있다. 다수 기업의 부도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금융기관의 부도까지 임박한 현실이다.지난 수 십년간 우리나라의 부실기업 정책은 부도를 지연시키면서 기업을 구제하려는 방식이었다. 성장의 동반자인 대기업이 부실화되면 정부는 구제금융과 조세감면을 택했다. 예금자와 납세자가 치료비를 부담하는 것이다. 제3자에 부실기업을 인수토록 할 때에도 인수경쟁은 없었고 인수자 결정과 특혜금융은 밀실에서 결정되었다. 이러한 과정이 장기간 반복되면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재벌과 은행 모두가 소위 도덕적 이완이라는 고질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정부 스스로가 「대마불사」를 신봉하는 동안 대기업의 투자와 은행의 대출에는 신중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신중하지 못한 재벌과 은행을 말리느라 각종 규제가 양산되었다.
이젠 세상이 바뀌어 과거식의 부실기업정책은 쓸 수도 없을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그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으니 문제다. 경쟁력없는 경영자와 근로자를 두고 국고와 은행돈을 아무리 대준들 경쟁력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가능한 방안중 법정관리제도는 그 좋은 취지와 법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효율적이지 못하다. 법정관리의 변형인 부도유예협약의 강점은 혼란을 피하고 묘수를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인데,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문제가 많고 무엇보다도 근본대책의 등장을 기다리는 임시방편이다. 이제는 근본대책을 결심할 시간이 되었다.
국민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부실기업정책은 무엇인가. 기존의 경영진과 주주에게 부실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기업을 회생시킬 인센티브와 능력있는 새로운 경영진, 주주를 찾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팔리는 것은 모두 파는 것이 효율의 요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금 채권단이 잘 팔릴 만한 기업은 그냥 두고 팔리지 않을 기업만 제3자인수를 모색하는 것은 잘못이다. 팔다가 정 팔리지 않는 기업만 은행관리를 하든 법정관리를 하면 되는 것이다.
부실기업을 사고 파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인수경쟁을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며, 그래야만 뒤가 시끄럽지 않다. 인수경쟁을 경쟁답게 하려면 정부는 외국자본의 참여도 주저할 바가 아니다. 기존의 주주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대규모 증자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부실기업을 조속히 파는 것이 좋은 이유는 민간끼리 부실채권을 해소하여 금융에 부담을 주지 않고, 새로운 주주야말로 진정한 구조조정에 착수할 유인이 크며, 무엇보다도 대기업들로 하여금 대마불사의 꿈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확실한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길로 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적 정서와 동정이 경쟁력을 살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기아사태는 우리가 어차피 겪어야 할 부도의 단면에 불과하며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이러한 사태는 재발한다. 경쟁력없는 기업의 부도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어떤 방법으로 사태를 수습하느냐가 앞날에 큰 파장을 미친다. 우리 경제의 앞날을 위해서 이번에 최선의 길을 갈 수 있다면, 이는 대기업과 금융의 고질병을 치유하고 선진경제로 다가서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경영의 실패, 주주의 태만, 채권자의 장님식 경영, 근로자의 조직화된 이기주의….
시장의 힘으로 이러한 병을 치유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시장경제가 제공하는 효율의 혜택을 누릴 자격이 없다. 만시지탄할 일이 아니다.
□약력
▲58년 대구 출생 ▲82년 서울대 경제학과 ▲미위스콘신주립대 경제학 박사 ▲행정쇄신위원회 행정제도개선분과위원회 위원 ▲현 경제규제개혁위원회 위원, 세계화추진위원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