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아파트 브랜드 '언어공해' 수준

‘카이저 팰리스’ ‘아르비체’ ‘파로스 프라자’ ‘아크로 스페이스’ 한두 번 들어서는 쉽게 따라 부르기 쉽지 않은 이름이다. 그렇다고 영어 사전에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단어들도 아니다. 영어인 듯 하면서도 이탈리아어인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복잡한 이름이다. 이들 모두 분양 시장에 나온 상가 이름이다.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짜임(Zzaim)’ ‘실크밸리’ ‘플럼 빌리지’ 등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단어들 투성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건설사일수록 아파트에 붙는 이름은 더욱 복잡하고 현란하다. 주상복합은 어떨까. ‘미켈란 쉐르빌’ ‘아카데미 스위트’ 등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들 아파트와 상가를 분양하는 건설업체들은 왜 이 같은 국적불명의 단어들을 내세울까. 브랜드 이름 대행 업체들은 최고급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건설사들이 영어 단어 조합 형태의 이름을 선호한다고 설명한다. 과거 ‘장미아파트’ 등의 고전적 이름에서 벗어나 ‘타워팰리스’ 등의 최고급 이미지를 신규 분양 물건에 이입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를 두고 ‘시어머니가 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 집을 쉽게 찾지 못하도록 며느리들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는 농담 섞인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국내 건설업계가 브랜드 파워를 내세워 분양전에 나서면서 빚은 웃지 못할 현상들이다. 분양 시장에서 현란한 이름으로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홀릴 수 있어야 분양에 성공할 수 있다는 단순하고 얄팍한 상술이 스며든 결과다. 최근 기자가 만난 코넬대의 건축학부 한 교수는 “한국의 아파트들은 모두 성냥갑 형태로 지어져 차별적인 특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하지만 브랜드 이름만 들으면 마치 천국에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10만가구에 달하는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는 이름이 촌스러워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름과 이미지만으로 분양시장에서 소비자들을 유혹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대형 건설사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것은 이름이 아니라 건축물에 대한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화려한 이름 대신 사용자들이 이용하기 좋고 편한 건축물을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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