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쉿, 저소음 하이브리드 경비함 출동!

국내 첫 출항 해경 '태평양 9호' 타보니<br>저속 운항땐 잉여전력 쓰는 전기모터로 추진<br>연료 25% 절약… 5m 파도에도 쾌속 항진<br>엔진 끄고 경계하다 불법조업 中 어선 덮쳐

10일 처녀운항에 나선 국내 첫 하이브리드 경비함 태평양 9호가 서해 일대에 대한 해상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첨단 전자장비로 함정을 지휘하는 함내 조타실.

10일 오전 9시 전남 목포시 삼학도 해경부두. "붕 붕 붕" 우렁찬 뱃고동 삼창과 함께 길이 112.7m, 폭 14.2m의 경비함정 태평양9호(3,000톤급)가 눈과 강풍이 휘몰아치는 바다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경찰관 39명을 포함한 대원 56명은 처녀 출항인데다 5m 높이의 파도가 요동치는 험한 기상인지라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태평양 9호의 작전 범위는 목포항을 떠나 진도앞바다를 거쳐, 신안 홍도와 흑산도 앞바다, EEZ까지로, 서해 일대를 샅샅이 훑는 6일간의 멀고 긴 여정이다. 많은 대원들은 문득 의문이 떠오른 듯 의아한 눈빛을 발했다. '엔진이 돌고 있는 것인가.' 대원들의 뜬금없는 생각과 달리 부두는 시야에서 차츰차츰 멀어져 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웅성거림이 들렸다. 디젤엔진에서 터져 나오는 엄청난 굉음에 젖어있는 대원들로서는 당연한 생각이다. 디젤엔진이 기계음이 요란한 공장이라면 하이브리드는 너무 고즈넉해서 소름이 돋을 산사에 비유할 수 있겠다. 오죽하면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경우 보행자를 위해 인공적인 엔진음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까지 생길까. 대원 김영옥 순경은 "다른 경비함에서는 취침시간 동안 엄청난 엔진소음에 몇 차례나 깨는지 모른다"며 "상상도 못한 경비함"이라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해군과 해경을 통틀어 최초인 하이브리드형 최신예 경비함정의 출항은 대원들의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다. 말로만 듣던 '하이브리드'의 위력은 허명(虛名)이 아니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구동원리를 적용한 태평양 9호는 12노트(1노트 시속 1.8km)이하 저속운항 시 발전기의 잉여전력을 사용한 750kW급 전기모터를, 고속운항 시에는 디젤엔진을 가동하는 방식이다. 1만 마력의 디젤엔진 4개로 최고 29노트 속도를 낼 수 있다. 7,000마력급 디젤엔진 2기로 구동되는 기존 경비구난함의 최고속도가 20노트에 이르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면 태평양 9호의 기동력을 가늠할 수 있다. 더욱이 통상 경비 항해의 70~80%는 저속운항이기 때문에 대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유람선'에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잉여전력을 이용하다 보니 4분의 1정도 사용연료도 줄일 수 있게 됐다. 대원들이 느낀 경이로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신예 전투함과 고급 유람선을 합친 듯한 제원과 편의시설에 또 한번 놀랐다. 태평양 9호는 5개의 날개로 이뤄진 가변익 추진기로 엔진기어를 바꾸지 않고 전ㆍ후진은 물론 정지도 가능할 정도로 기동력이 뛰어나다. 아울러 긴급구조 대응능력을 높이기 위해 10인승에 최대 40노트의 고속구조정 2대도 준비돼 있다. 반경 96마일까지 탐지하는 레이더는 선박 200~500개의 일거수 일투족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전자식 상황판과 수 십 여대 모니터 등에 경비함 내ㆍ외부 정보가 모이는 조타실은 지휘사령부 같은 분위기다. 최대 사정 12km의 자동포와 최대사정 3km의 발칸포, M-60, 최대 150m까지 뻗어나가는 소화포는 특히 막가파 식으로 덤비는 중국 어선을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중국 어선은 갈고리, 도끼, 포환 등으로 해경단속에 저항해 우리측 대원들이 부상을 당하기 일쑤고, 숨진 경우도 있었다. 이날 기상악화에 따라 국내어선과 중국어선들을 피항시켰던 태평양 9호는 다음날인 11일 새벽 서해 EEZ 인근에서 엔진을 껐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송골매처럼 숨을 죽이고 결정적 순간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어선 2척이 EEZ를 넘어와 불법조업을 했고 태평양 9호는 소리 없이 다가가 두 척을 나포했다. 중국어선은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덤빌 상대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태평양 9호는 14일에도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어선 두 척을 더 나포, 목포항으로 이송했다. 바다 위는 긴장의 연속이건만 대원들의 실내 생활은 사실 즐거움이 넘쳐났다. 헬스기구가 가득 찬 체육실, 탁구장, 사우나 실, 세탁실 등 체육ㆍ복지시설과 공기청정기가 설치돼 쾌적한 느낌을 주는 식당과 휴게실은 뭍의 여느 시설과 비교해도 뒤질게 없다. 유난히 산뜻한 느낌을 주는 침실들은 여성대원 3명을 위한 것이다. 꽤나 공을 들인 눈치다. 특히 의무시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긴급수술에 필요한 장비를 갖췄고 서울대병원을 통한 화상진료도 가능하다. 하이브리드 경비함의 첫 함장 영예를 안은 김문홍 경정은 "최고의 해경대원과 최적의 근무여건을 갖춘 우리 함정은 우리나라 해역 어디라도 출동, 해양주권을 수호할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태평양 9호는 15일 목포항에 입항, 18일 취역식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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