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31일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경제계 제안을 통 크게 받아들이겠다”며 ‘대규모 경제인 사면’과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뉴딜정책’을 제안했다. 여당 의장의 깜짝 제안에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성장과 시장체제보다 분배와 균형에 관심을 보이던 참여정부의 좌파적 정책기조가 바뀌는 것이냐”며 기대감을 보였다. 그러나 열흘 뒤 발표된 ‘8ㆍ15 특별사면 명단’에는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로 가득 찼을 뿐 김 의장이 뉴딜정책으로 약속했던 재계 총수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2. 지난 11일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기자브리핑. 정 장관은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데 대해 “가능하면 막아보려고 했는데 안됐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콜금리가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유권한이지만 한은이 경기흐름에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13일 기획예산처는 재정 조기집행을 통해 경기흐름을 이어가겠다고 발표했다. 한은은 시중 유동성 흡수를 위해 콜금리를 올렸는데 돈을 풀고 나선 셈이다. 국제유가 등 대외요인 불안으로 경기하강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경제정책은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각종 대책을 준비 중이지만 정부부처간, 당정간 엇박자는 계속되고 있다. 행정부처 내 정책조율을 주도해야 할 재경부도 경제사령탑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 경기활성화 대책, 출총제 등 각종 이슈에서 주도권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재계 인사들은 “정부와 여당의 대책이 무엇인지, 뭘 하겠다는 것인지 혼란스럽다”며 “확실한 것은 대외 여건과 국내 경기가 불안하다는 것 뿐”이라고 우려했다. ◇‘따로국밥식’ 경제 살리기 대책=당정은 경기회복 기조를 이어가기 위한 각종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여당은 ‘뉴딜’을 통해 출총제 등 각종 규제를 개선하고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할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재계와 합의했다. 그러나 이 같은 약속은 보름도 안돼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뉴딜의 핵심 중 하나인 경제인 사면이 대폭 축소되며 회의론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경제인 사면 축소 발표를 계기로 당 안팎에서는 뉴딜 회의론이 번져가는 분위기며 김 의장의 리더십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돌고 있다. 재경부가 준비 중인 ‘기업환경개선’ 역시 토지ㆍ환경 등 이해관계가 엇갈려 있어 관련 규제를 획기적으로 허용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 ◇극한 대립으로 치달은 출총제=출총제 개편방안을 둘러싼 논란은 말 그대로 혼돈 상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재계간 대립에 이어 공정위ㆍ재경부ㆍ산업자원부 등 관계 부처간 싸움과 열린우리당 내 이견까지 가세된 형국이다. 권오승 공정위원장은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재계는 순환출자 금지가 출총제보다 더 강한 규제라면서 조건 없는 출총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재경부와 산자부도 “조건 없이 폐지하는 것도 대안”이라며 공정위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국민들은 누구 얘기가 맞는 건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재경부나 공정위 등 관련 경제부처들은 여당의 ‘친기업적ㆍ시장지향적 이니셔티브’에 대해 “큰 골격에서는 같은 생각”이라며 대립각을 세우려 하지 않을 뿐 여전히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당ㆍ정ㆍ청 ‘경기 인식’부터 공유해야=경제 전문가들은 당정간, 정부부처간 정책 혼란이 경기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며 경기에 대한 인식 공유와 함께 정책 조율을 위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팀장은 “경기가 꺾였다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는데 정부는 아직까지 괜찮다는 태도이고 여당에서는 경기부양의 유혹을 느끼고 있다”면서 “이런 인식의 차이가 해법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은 “과거와 달리 정책 조율 기능이 약화돼 아이디어가 정책으로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당ㆍ정ㆍ청이 머리를 맞대고 경기에 대한 인식부터 공유해 정책의 방향과 우선 순위를 가려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