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확대 판결이 나오기 무섭게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의 변경 또는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작업이 국회에서 시작됐다.
20일 정치권과 재계 등에 따르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날 오전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현재 발의된 5건의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소위에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법안 통과가 불발됐지만 관련 논의는 다시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는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이어 노조법 개정 움직임이 겹치면서 노사관계에 대한 중압이 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노사관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노사 관련 이슈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기업 경영이 한층 힘겨워졌다"면서 "기업들이 곳곳에 지뢰가 산적한 가시밭길을 헤쳐나가야 하는 답답한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타임오프 폐지, 유급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 허용, 노조 파업 유급화 등 여러 독소조항을 가득 담고 있는 노조법 개정안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통상임금과 더불어 향후 노사갈등 악화에 기름을 붓는 암초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우선 새누리당의 김성태·이완영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한국노총 등의 상급단체에 파견된 노조전임자도 타임오프 한도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010년 7월부터 시행 중인 타임오프제는 현재 해당 기업이 아닌 상급단체에 파견된 근로자에게는 임금 지급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조활동도 근본적으로 더 나은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의 일부인데 해당 사업장이 아닌 상급단체의 업무를 담당하는 노조원에게 기업이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상식과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개정안에 담긴 더 큰 문제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쟁의행위를 포함하는 노조활동의 전반이 무차별적으로 급여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타임오프제도는 유급 노조활동의 범위를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활동 등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동조합의 유지·관리 업무'로 제한했다.
하지만 이 범위의 울타리를 제거해 '노조법에 따른 노조활동'으로 두루뭉술하게 규정한 김 의원의 안이 통과되면 결과적으로 기업들은 파업과 쟁의행위를 주도하는 노조전임자에 대해서도 꼼짝없이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업무를 제쳐두고 사용자에 맞서 싸우자는 노조에도 급여를 줘야 한다는 법 개정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지해야 할 악법"이라고 분개했다.
통과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민주당의 김경협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타임오프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 사업장 규모별로 △100인 미만은 1명(2,000시간) △100인 이상 200명 미만은 1.5명(3,000시간) △200명 이상 300명 미만은 2명(4,000시간) 등으로 제한한 유급 노조전임자는 노사 합의만 이뤄지면 무차별적으로 늘어나게 된다.한편 이날 오전 국회 환노위에서 이 같은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지자 경총·전경련·대한상의 등의 재계 단체는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한 저지에 나섰다.
미국 출장 중이던 박용만 대한상의회장은 상근부회장 등에게 국회로 가서 의원들을 직접 만나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총과 전경련은 각각 19일과 20일 "노사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노조법 개정안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며 잇따라 성명을 냈다.